1996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전체 크기 307㎝, 불상 크기 193㎝. 원적산(圓寂山) 자락에 있는 이 석불좌상은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고 현재는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칼은 나발(螺髮: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며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는 마모되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왼손은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살짝 당겨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고 있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으로 넓게 트인 대의(大衣: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안에 내의(內衣)를 입었다.
양팔에서 형성된 두터운 옷주름은 양 무릎으로 흘러내려 人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옷자락 일부는 그대로 흘러내려 양 무릎 위에 독특한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 위에는 대의 자락을 고리로 고정시켜 삼각형 주름을 만들었다. 등 뒤에는 간략하게 대의(大衣)의 윤곽선만을 나타냈다.
상 · 중 · 하대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 상대석의 앙련(仰蓮: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은 8엽(葉)이고 그 사이에는 간엽(間葉: 사이 잎)이 있다. 연꽃 안에는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갖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상대석 연꽃 안에 불상을 표현한 경우는 다른 불상 대좌에서는 그 예를 찾기 어렵다.
중대석은 8각형으로 여섯 면에는 안상(眼象)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 있는 신장상을 새겼다. 나머지 두 면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하대석에는 16개의 연꽃을 표현하였고 그 아래 8각형의 각 면에는 안상을 새겼다. 지대석은 현재 땅에 묻혀 있는데 세 조각으로 깨어졌다.
이 불상은 얼굴 모습이나 왼쪽 어깨의 삼각형 주름, 양팔의 계단식 옷주름, 상 · 중 · 하단을 갖춘 팔각 대좌 등으로 보아 9세기 조각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처 여주 포초골 미륵좌불,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과 더불어 이 지역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10세기 경에 제작된 봉림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비슷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주 포초골 미륵좌불은 1973년에,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은 1980년에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