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현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조선 세종 21년(1439)에 석축으로 개축한 읍성이다. 본래 고려 현종 때 토성으로 축조하여 장기 지역의 치소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잦은 동여진 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조선 개국 후 석축성으로 개축하였다. 성의 둘레는 3,664척, 높이 12척이다.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다고 하며, 군창도 있었다고 전한다. 1991년 이후 6차례 이상 고고학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체성과 옹성문지, 수구 등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
포항 장기읍성(浦項 長鬐邑城)은 1991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에 의해 정밀 지표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6차례 이상의 조사를 통해 서문지, 동문지, 수구, 각 체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포항 장기읍성은 고려 현종 2년(1011) 여진족(女眞族) 해적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토성이었다. 이 토성은 조선 개국 후인 세종 21년(1439)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성의 둘레는 174보(步)이고 성안에 우물이 두 곳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세종 21년(1439)에 돌로 쌓았고, 둘레가 3,664척 높이는 12척이며, 샘이 두 곳 못이 두 곳으로 겨울과 여름에도 마르지 않았고, 군창도 있다"라고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석축이며, 둘레가 2,980척 높이는 10척, 우물이 네 곳, 못이 두 곳이다. 구 읍성이 현의 남쪽 2리에 있으며 돌로 쌓아 그 둘레가 468척이고, 높이는 12척, 샘이 두 곳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포항 장기읍성은 체성(体城)과 옹성문지(甕城門址)에 대한 복원 공사가 이루어져 있다. 성내에는 약 20호의 가옥과 5개소의 우물, 3개소의 웅덩이가 있다. 성내 중앙에는 장기항교가 있으며, 향교 서편에 동헌(東軒) 건물로 사용하였다는 근민당(近民堂)이 있었다. 근민당은 1922년과 1960년 두 차례 이축하여 현재는 장기면사무소 별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포항 장기읍성은 해발 252m의 동악산에서 해안 방면인 동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지맥(地脈) 정상의 평탄면에 말굽 모양의 평면 형태로 축성한 읍성이다.
읍성의 둘레는 약 1300m, 성내의 면적은 약 81,738㎡ 정도이며, 성문 3개소와 수구 1개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각 성문마다 출입문을 보호하기 위한 옹성(甕城)을 설치하였으며, 12개소의 치성(雉城)을 설치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체성(体城)은 기단부를 조성한 뒤 길이 1m 내외, 높이 50~60cm의 대형 할석(割石)을 4~5단 정도 거의 수직을 이루도록 쌓았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돌의 크기를 차츰 줄여 내경이 되도록 돌을 쌓았다. 체성의 상단부에는 미석(眉石)을 마련하고 여장(女墻)을 설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여장은 없고 여장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너비 1.2~1.4m 할석열의 흔적만 몇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체성부는 미석까지 남은 부분의 높이가 서남벽에서는 3.7~4.2m, 동북벽에서는 3.7m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외곽 지형이 급경사를 이루는 성벽보다는 평지를 이루는 서남벽 쪽을 조금 높게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체성의 기저부 너비는 7~8m 내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체성은 동문지가 있는 동남벽만 거의 직선 형태에 가깝게 만들었고, 그 외의 성벽은 지형에 따라 곡선을 이루고 있다. 체성의 외곽 지형은 서북벽 및 동북벽 쪽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반해, 서남벽과 동남벽 쪽은 평지 및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치성의 대부분이 서남벽과 동남벽에 설치된 것은 경사가 완만하여 적의 침입이 용이하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평지인 서남벽 외곽에는 해자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여장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여장의 기단으로 보이는 석열의 흔적만 2~3곳에서 확인될 뿐이다.
현재 복원이 이루어진 서문과 북문 문지의 너비는 3.5m 정도이다. 동문지의 너비도 대동소이하다. 동문지 옹성 위에는 ‘배일대’라고 새겨진 길이 140㎝, 폭 59㎝의 돌이 놓여 있다. 옹성은 한쪽이 개방된 형태의 반원형 편문식 옹성이다. 축조 수법은 내벽과 외벽이 기본적으로 동일하나 외벽보다 내벽 돌의 크기가 작다. 옹성은 먼저 바닥을 고른 후 작은 돌을 깐 다음 납작한 할석으로 기단 석열을 조성하였다. 그 위에 기단 석열보다 큰 할석을 약 14㎝ 정도 들여쌓기하고 할석을 다듬은 면을 외부로 향하게 하여 반원형으로 구획하였다. 옹성의 내부는 잡석(雜石)으로 채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옹성의 높이는 2.4m이고, 옹성 내면의 둘레는 약 18m, 외면 둘레는 약 35m, 너비는 6m 정도로 확인되었다.
성 안팎에서 분청사기와 백자 잔, 옹기편, 기와편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기와 중에 ‘숭정’이라는 연호가 새겨진 암막새가 있다. 포항 장기읍성에서 출토된 수막새 중 연화문을 띤 것은 현재 민속예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주로 조선 후기에 사용된 것이다. 이 수막새와 동일한 문양 구성을 가진 예가 경주 동방동 기와가마터에서 확인되고 있어 포항 장기읍성 성내외 건축물의 축조 연대를 밝히는 데 참고할 수 있다.
포항 장기읍성의 입지는 산성형에 해당하며 성의 평면 형태는 말발굽 모양인 제형으로 축조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고려 현종 당시 토성으로 초축된 후 조선시대에 석축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읍성은 조선시대 이전부터 동해안 지역의 해안을 방어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포항 장기읍성은 당대의 국방 체계와 축성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성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