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천축국(天竺國)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하였으며, 법주사의 창건보다 1년이 앞선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사찰의 주1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잠시 머물러 용바위 위에 서서 신라의 서울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였다는 설과, 수많은 당우로 산야를 메웠던 사찰이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화되었다는 설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당우는 근래의 불사를 통해 건립되었다. 1986년 주지 무상이 대웅전과 산신각을 중창하였고, 다음 주지 현관이 1990년대에 요사와 범종각을, 2002년에 주2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을 주3로 하여 주4과 대세지보살의 삼존상이 모셔져 있고, 5종의 탱화가 봉안되었다. 이 중 화법이 정교한 후불탱화(後佛幀畵)와 1877년(고종 14)에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국가지정유산은 동 · 서삼층석탑, 마애여래입상, 목조 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2002년에 보물로 승격된 옥천 용암사 동 · 서 삼층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주5을 올린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높이는 약 4m이다.
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은 높이 3m에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찰에서는 마의태자상이라고 한다. 마의태자를 추모하였던 신라의 공장(工匠) 후손이 염불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미륵불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이 마애불은 영험이 있어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1998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옥천 용암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1880년에 불복장에서 주6 8년 신묘년(1651)’에 만들어진 주7이 발견됨에 따라, 1651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라니경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 경상북도 문경 오정사(烏井寺)에서 만들어져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