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장현동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일대에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복합유적.
유적
건립 시기
청동기시대
소재지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내용 요약

'울산장현동유적'은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일대에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복합유적이다. 청동기시대는 이른 시기의 취락유적이 중심을 이루고, 원삼국시대에는 널무덤, 덧널무덤 등의 무덤유적이 중심을 이루며, 고려~조선시대에는 집자리 및 무덤 등이 조성된 복합유적이다. 당시 이 지역 일대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 울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정의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일대에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복합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울산장현동유적(蔚山蔣峴洞遺蹟)'은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일대에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대규모 복합유적이다. 울산광역시 중구 장현동 일원의 함월산(200m), 황방산(142m)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언덕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유적 북쪽으로는 시례천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동천강이 흘러 지형적 경계를 이룬다. 황방산을 중심으로 뻗은 언덕은 남쪽으로도 이어지는데, '울산장현동유적' 남쪽으로 '서동유적', '약사동유적' 등 대규모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울산장현동유적'은 일찍이 황방산 일대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돌검 · 돌칼 · 돌도끼 · 돌살촉, 석제 주1, 가락바퀴 등의 선사 유물,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유물과 청자 등이 채집되어 장기간에 걸쳐 유적이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후 이 일대를 중심으로 울산(우정지구)혁신도시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2010∽2011년 울산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장현동유적'(울산혁신도시 2구역(C4 · 5지구))과 '장현동53번지유적'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장현동유적'은 4개 지구로 나뉘고 청동기시대 집자리 80동과 구덩이, 도랑 등과 원삼국시대 집자리 2동과 주2 19기, 주3 36기, 주4 4기, 주5 16기, 구덩이, 도랑 등이 확인되었다. 또한 삼국시대 집자리와 통일신라시대 집자리, 주6, 숯가마 등이 확인되었고, 고려∽조선시대 집자리 15동, 무덤 205기, 구덩이 30기, 도랑 22기, 건물지 3동, 우물 2기 등이 확인되었다.

'장현동53번지유적'은 2개 지구로 나뉘어 청동기시대 집자리 23동,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1동, 조선시대 아궁이, 적심(積心: 주춧돌 주위에 채우는 보강용 돌무더기), 집자리 3동, 무덤 17기, 도랑, 도로 등이 확인되었다.

형태와 특징

'장현동유적'과 '장현동53번지유적'의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방형과 장방형, 세장방형 등 다양하며, 집자리 내부에 화덕자리과 기둥구멍, 벽도랑 등이 확인된다.

유물은 민무늬를 비롯하여 겹아가리와 X자문, 짧은빗금무늬, 골아가리무늬, 구멍무늬가 다양하게 복합된 토기가 출토되었다. 석기로는 돌화살촉, 돌칼, 간돌창, 간돌도끼, 반달칼, 갈돌,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삼국시대 유구는 집자리도 있지만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무덤, 독무덤 등 무덤이 중심이다. 널무덤과 덧널무덤은 판재를 조립한 것으로, 주7는 널무덤의 경우, 널 내부나 널 상부, 외부, 봉토 등에 껴묻고, 덧널무덤은 덧널 내부에서 껴묻는다.

껴묻거리에는 주머니호, 쇠뿔손잡이항아리, 굽다리토기, 화로형토기, 굽다리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등의 토기와 쇠도끼, 주8, 쇠낫, 쇠손칼, 쇠끌, 쇠창, 쇠칼, 쇠화살촉 등의 철기가 출토되었다. 무덤구조와 출토 유물로 보아 서기전 1세기부터 3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조선시대의 무덤은 널무덤, 회격묘(灰隔墓: 관 주위를 석회, 숯, 모래 등을 혼합해 만든 묘)가 있는데, 무덤 내부에 주9과 요갱(腰坑: 시신을 안치한 목관 허리 부근에서 땅 밑으로 파내려간 둥근 구덩이)을 설치한 것도 있다.

유물은 청자와 백자, 분청사기 등의 자기류와 청동 숟가락과 청동 그릇, 철제 가위, 벼루 등이 있으며, 대체로 고려 말기∽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이처럼 '울산장현동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된 복합유적으로, 당시 이 지역 일대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 울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참고문헌

단행본

『울산 약사동393 · 약사동53유적』(울산문화재연구원, 2013)
『울산 장현동유적Ⅰ』(울산문화재연구원, 2013)
『울산 장현동유적Ⅱ』(울산문화재연구원, 2013)
『울산 장현동유적Ⅲ』(울산문화재연구원, 2013)
『울산 장현동유적Ⅳ』(울산문화재연구원, 2013)

논문

김원룡, 「울산군 하상면 장현리 출토의 석기 · 토기」(『해원 황의돈 선생 고희기념 사학 논총』, 1960)
주석
주1

동검의 자루 끝에 청동(靑銅)이나 돌로 만들어 붙인 장식.    우리말샘

주2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직접 넣거나 목관이나 목곽에 시체를 넣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린 무덤.    우리말샘

주3

관을 넣어 두는 널방을 나무로 만든 무덤. 평양 부근의 낙랑 고분, 경주 부근의 신라 고분이 이에 속한다.    우리말샘

주4

구덩이를 파서 널이나 덧널 따위를 쓰지 않고 직접 시체를 묻어 만드는 무덤.    우리말샘

주5

시체를 큰 독이나 항아리 따위의 토기에 넣어 묻는 무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인 무덤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쓰여 지금까지도 일부 섬 지방에서 쓰이는데, 하나의 토기만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개 또는 세 개를 이용하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6

돌로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쌓아 올려 봉토를 만든 무덤. 널길이 달려 있고 천장 구조가 다양하다.    우리말샘

주7

장사 지낼 때, 시체와 함께 묻는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판 모양의 얇은 쇠로 만든 도끼. 도구를 만드는 중간 재료나 화폐로도 쓰였다.    우리말샘

주9

장식을 위하여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 등잔이나 조각품 따위를 세워 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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