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주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신은현(新恩縣)
주요 관직
전전승지, 장군, 위사공신
관련 사건
무오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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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이공주는 고려 후기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이다. 원래 김준과 같은 최씨정권의 가노 출신으로서 최의에 의하여 낭장으로 발탁되었다. 김준의 집권에 기여함으로써 장군의 직에 올랐지만, 김준 집권기에 정치적 영향력은 차츰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정의
고려 후기, 최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위사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무신.
가계 및 인적사항

최씨정권(崔氏政權)의 가노(家奴) 수장이며, 신은현(新恩縣, 현, 황해도 신계군) 출신이다.

주요 활동

무신집권자 최우(崔瑀)의 가노 출신으로서 최우의 신임을 받아 전전승지(殿前承旨)가 되었다. 1249년(고종 36) 최우가 죽자 야별초(夜別抄)와 내외도방(內外都房)을 장악한 상장군(上將軍) 주숙(周肅)은 왕정복고(王政復古)를 도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가노 출신인 최양백(崔良伯)·김인준(金仁俊) 이후 [김준(金俊)으로 개명] 등과 함께 최씨의 가병(家兵)을 지휘하여 주숙을 신속히 제압함으로써 서자인 최항(崔沆)이 정권을 계승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 공으로 별장(別將)에 제수되었다.

1258년(고종 45)에는 집정자 최의(崔竩)에 의하여 낭장(郎將)으로 발탁되었다. 이는 노비 출신으로 6품 이상의 벼슬인 참직(參職)에 임용된 파격적인 조치였다. 최우 이후 최의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최씨정권을 섬기고 나이가 많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최의와는 정치적으로 소원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같은 가노 출신 김인준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권력 관계의 결집에 가담하였다.

이듬해 1259년(고종 46) 대사성 유경(柳璥), 별장 김인준, 장군 박송비(朴松庇), 도령낭장(都領郎將) 임연(林衍) 등과 함께 정변[무오정변(戊午政變)]을 일으켜 최의 일당을 죽이고 최씨정권을 종식시켰다. 정변에 성공한 이후 8공신의 한 사람으로서 장군에 올랐으며, 1262년(원종 3)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그러나 김준에게 권력이 집중된 이후로는 정치적 입지가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권세를 이용, 출신지인 신은현을 담주(覃州)로 승격시켰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논문

강재광, 「최씨가 가노출신 정치인의 역할과 무오정변의 성격」 (『한국사연구』 127, 한국사연구회, 2004)
허흥식, 「1262년 상서도관첩의 분석」 (『한국학보』 27·29, 일지사, 1982)
홍승기, 「고려시대 최씨무인정권과 최씨가의 가노」 (『진단학보』 53·54, 진단학회, 1982)
집필자
윤용혁(공주대학교 명예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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