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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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물
일제강점기 「쌍옥루」, 「낙화유수」, 「수일과 순애」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고종 38)
사망 연도
1973년
출생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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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쌍옥루」, 「낙화유수」, 「수일과 순애」 등의 작품에 관여한 영화인.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
내용

1901∼1973. 서울 출신. 공옥보통학교(工玉普通學校)를 마치고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졸업하였다. 소년시절부터 활동사진에 관심을 가졌고, 20세에 영화수업을 위하여 일본으로 갔다.

1923년 귀국하여, 영화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신문에 영화이론 소개 및 영화평을 썼다. 1924년 11월 연극과 영화의 혁신을 기하기 위하여 현철(玄哲)과 함께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하고 각본작법 · 연기론 · 활동사진사 등을 가르쳤다.

1925년 이필우(李弼雨) 등과 고려영화제작소를 설립하고 「쌍옥루(雙玉淚)」를 각색, 감독함으로써 영화감독이 되었다. 같은 해 겨울에는 단성사의 영화선전 및 촬영부의 일을 맡았다.

1927년 김영환(金永換)과 금강키네마를 설립하였으며, 대표적인 무성영화 「낙화유수(落花流水)」를 감독하였다. 그는 1924∼1954년까지 30년 동안 감독작품 7편, 각본 16편을 발표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감독과 각본을 겸한 「쌍옥루」 · 「낙화유수」 외에 「승방비곡」(1930) · 「아리랑 그 후의 이야기」(1930) · 「수일과 순애」(1931) · 「갈대꽃」(1931) 등이 있다. 주요시나리오로는 「춘향전」(1935) · 「3·1 혁명기」(1947) · 「아름다웠던 서울」(1950) · 「성불사」(1952) · 「영광의 길」(1953) · 「고향의 노래」(1954) 등이 있다.

그의 말기의 각본은 윤봉춘(尹逢春)에 의하여 연출되었으며, 그 내용은 민족정신과 정서를 담고 있다. 그는 일제의 압박이 심하던 1935∼1945년 사이에는 일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감독 및 시나리오작가로서 초창기 한국영화를 개척한 공로자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영화발달사』(유현목, 한진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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