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李富)의 본관은 황려(黃驪)이다. 이규보(李奎報)의 숙부이다.
이부는 1179년(명종 9) 대장군(大將軍)으로 서북면지병마사(西北面知兵馬事)로 있을 때, 서경 조위총(趙位寵)의 잔당이 다시 일어날 것을 염려하여 이들을 토벌하고자 하였다. 그때 마침 잔당들의 식량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공문을 보내 식량을 주겠노라고 속였다. 그리고 여러 성에 만일 적이 성으로 들어오면 성문을 닫고 모두 죽이라고 비밀히 지시하였다.
이후 공문의 지시에 따라 적을 잡아 죽인 성이 5곳이었고, 구주(龜州)에서 죽인 자만 300여 명이었다. 가주(嘉州) 사람들은 적 100여 인을 끌어들여 창고에 집어넣고 문을 봉쇄하였는데, 적은 탈출할 방법이 없자 스스로 창고를 태워 곡식 10만 곡(斛)과 함께 타 죽었다.
이에 반군의 우두머리 독우(獨牛)와 방전(方田) 등은 이를 알아차리고 다시 패거리를 불러 모아 난을 일으켰다. 병마사가 여러 성의 군사를 동원하여 이들을 공격하였으나, 관군은 거듭 패배하였다. 이에 다시 군사를 보강하여 여러 차례 전투를 치른 후에 진압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부의 술책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부는 1181년(명종 11) 직문하성(直門下省)에 임명된 이후로는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데, 사망하였거나 중앙 정계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