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奇蘊)의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국왕 원종의 배다른 누이의 사위이다.
기온은 국왕 원종의 측근 세력으로 국가 기밀에 관한 논의에 참여한 인물이다. 1268년(원종 9)에 무진정변(戊辰政變)이 일어나 김준(金俊)이 제거되자 그의 재산을 몰수하여 환관(宦官) 김경(金鏡)과 최은에게 뇌물로 바쳤다. 김경과 최은은 임연(林衍)과 함께 무신정권의 집정자 김준을 제거하였는데, 임연은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이들을 죽였다.
또한, 임연은 국왕의 신뢰를 받던 대장군(大將軍) 기온을 어사대부(御史大夫) 장계열(張季烈)과 함께 섬으로 유배 보냈다. 임연이 이들을 제거하려고 한 것은 결국에는 국왕 원종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은 기온이 유배에서 풀렸지만, 임연이 그를 평장사(平章事) 유경(柳璥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장계열과 함께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다시 다른 섬으로 유배 보낸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1270년(원종 11)에 임연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임유무(林惟茂)도 제거되자 기온도 복권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1274년(원종 15)에 기온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서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송송례(宋松禮), 응양군(鷹揚軍) 상장군(上將軍) 김광원(金光遠) 등과 함께 정동군(征東軍)을 선발하는 데 참여하였다.
같은 해에 원종이 사망하자 기온이 표문을 받들고 원나라에 들어가 고려 국왕의 훙거를 보고하였고, 세자 왕심(王愖)이 충렬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충렬왕은 즉위 이후 추밀원부사 기온을 원나라로 보내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맞아오게 하였다.
이후에는 기온의 행적이 사료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최근 충청남도 태안군의 연안 해역 마도(馬島) 주변에서 발견된 ‘마도3호선'의 목간(木簡) 중에서 ‘기대랑택상(奇待郞宅上)’의 ‘기대랑’이 기온일 것이라는 연구 성과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