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번(趙允璠)의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아버지는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 조오(趙璈)이다. 조오는 1258년(고종 45)에 무오정변(戊午政變)이 일어났을 때 최의(崔竩를 제거하는 데 참여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책봉되었고, 1268년(원종 9)에 김준(金俊)을 제거하는 무진정변(戊辰政變)에도 가담하여 위사공신(衛社功臣)이 되었다.
이런 아버지의 위상이 아들 조윤번에게 끼친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직책이 장군(將軍)이었던 것도 아버지 조오의 활약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얻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나라의 평장정사(平章政事) 아흐마드〔아합마(阿哈馬)〕가 조윤범의 사위이다.
조윤번이 아버지 조오와 함께 무오정변과 무진정변에 참여하였지만, 국왕 원종과 갈등하였던 김준과 임연(林衍)에 비해 원종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무진정변 이후 임연이 권세를 함부로 휘둘렀고, 급기야 1269년(원종 10)에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安慶公) 왕창(王淐)을 옹립하자 조야(朝野)의 인심이 아버지 조오에게로 쏠렸다.
조윤번은 장군 김문비(金文庇) · 윤수(尹秀)와 함께 임연을 제거하기로 모의하였고, 이런 사실을 조오에게 알렸으나 따르지 않았다. 김문비 등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오히려 임연에게 모의 사실을 고발하였다. 이에 임연은 조오를 흑산도(黑山島)로 유배 보내고, 조윤번과 조오의 사위 비서랑(秘書郞) 장호(張顥) 등 7인을 죽이고 그의 집을 몰수하였다.
조윤번은 비록 죽임을 당하였지만, 그의 딸은 1280년(충렬왕 6) 원나라의 평장정사(平章政事) 아흐마드에게 출가하였다. 이는 아버지 조오가 몽골 황제로부터 금부(金符)를 하사받고 만호(萬戶)가 되었던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