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좌 불화첩 ( )

목차
관련 정보
회화
작품
문화재
조선 초기의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화첩.
목차
정의
조선 초기의 화가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화첩.
개설

조선시대 16세기 도화서(圖畵書) 화원(畵員) 이상좌(李上佐)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나한화 화첩으로 현재는 5점만이 전하고 있다. 종이에 수묵의 빠르고 호방한 필치로 그린 선묘(線描) 나한 초본(草本)이다. 화첩의 크기는 세로 50.6㎝, 가로 31.1㎝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으로, 1975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조선 숙종 때의 명신인 허목(許穆)의 『미수기언(眉叟記言)』 중 ‘이상좌불화묵초발(李上佐佛畵墨草跋)’이라고 제(題)한 글에, “이상좌의 불화묵초가 6본 있었는데, 낭선군 이우(李俁)가 그림을 사랑하여 그 화본을 구하였다. … 명종, 중종 이전에 안견(安堅)은 산수로서 이름이 났고 이상좌는 인물을 잘 그려 신묘하다고 칭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 불화첩은 바로 그 6본 불화묵초 중 한 본이라고 생각된다.

채색은 가하지 않고 묵선(墨線)만으로 나한(羅漢)을 그렸다. 처음에는 담묵(淡墨)으로 밑바탕을 그리고, 다시 그 위에다 농묵(濃墨)으로 그렸다. 현재는 5점만 남아 있으나, 각 나한의 머리 위에 묵서한 번호로 미루어보아 16나한상을 그렸던 것 같다.

제3나한인 가나가바라타자(迦諾迦跋釐墮闍, Kanaka-bharadvāja)는 왼쪽으로 몸을 틀고 유희좌(遊戱坐)에 가까운 모습으로 앉아 있다. 두 손으로는 불자(拂子)를 잡고 있다.

제4나한 수빈다존자(蘇頻陀尊者, Subinda)는 노승으로 제3나한과 비슷한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발(鉢)을 받쳐 들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가 매우 특징적이다.

제5나한 나쿠라존자(諾距羅尊者, Nakula)도 역시 노승의 모습이다. 비스듬히 앉아 오른손으로는 맹수의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는 똑바로 석장(錫杖: 중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을 잡고 있다.

제12나한 나가세나존자(那伽犀那尊者, Nāgasena)는 두건을 쓰고 눈을 지그시 감고 선정(禪定)에 든 노승이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 선정인(禪定印: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모은 손 모양)을 결(結)하고 상현좌(裳懸座: 불상의 옷주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제15나한 아지타(阿氏多, Ajita)는 젊은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오른손에는 부채와 같은 것을 들었으며 왼손에는 발을 들고 있다.

붓놀림이 활달하며 유려한 필치로 각 인물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얼굴은 세필(細筆)로써 섬세하게 표현하고 나한들의 가사(袈裟)는 가는 선과 굵은 선을 적당하게 사용하여 강조할 곳에 악센트를 주었다.

뛰어난 묘사력과 유려한 필치로 나한들을 묘사한 이 불화묵초본은 비록 완성된 그림이 아닌 밑그림이기는 하지만, 간단하고 단순한 필선으로 그려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의 「오백나한도」와는 달리 활달한 기운이 넘친다. 조선 초기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로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조선전기국보전-위대한 문화유산을 찾아서(2)』(호암미술관, 1996)
『국보』10 회화(안휘준 편, 예경산업사, 1986)
『한국미술』2 조선Ⅰ(최순우, 도산문화사, 1984)
「왕실 발원 불화와 궁중 화원」(유경희, 『강좌미술사』 26-2, 2006)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정희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