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익(聖翼). 이방직(李邦稷)의 종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창문(李昌文)이다. 아버지는 이명복(李命復)이며, 어머니는 허원(許垣)의 딸이다. 이명석(李明錫)에게 입양되었다.
1773년(영조 49)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사간원정언·홍문관부수찬·교리를 역임하였다. 1781년 지평으로서 전 이조판서 송덕상(宋德相)이 왕위 계승에 대하여 올린 소에 흉역(凶逆)의 뜻이 있다 하여 옥에 갇히고 많은 유생들의 공격을 받자 송덕상에게 합당한 형률을 시행하여 뭇사람들의 분노를 풀어 주고 전 부사(府使) 유당(柳戇)은 절도(絶島)에 정배(定配)할 것을 상소하였다.
1792년 사헌부헌납을 거쳐 통정대부에까지 올라 병조참의에 이르렀으나, 1796년 안변부(安邊府)에 유배되었다가 5개월만에 풀려났다. 1806년 형조참의로 다시 등용되어 대사간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