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팔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평안북도암행어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중(彛仲)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65년(영조 4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전주
주요 관직
평안북도암행어사|대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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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평안북도암행어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중(彛仲). 이경우(李慶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중인(李重寅)이다. 아버지는 이이정(李耳鼎)이며, 어머니는 조진겸(趙鎭謙)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0년(정조 14) 성균관 유생으로 도기(到記)의 강(講)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전시에 직부(直赴)하여, 그 해 증광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805년 평안북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가산(嘉山)의 갈마창(渴馬倉)을 개선하여 고칠 것, 선천(宣川)의 탄도(炭島) 목장을 가도(椵島)로 이정(移定)할 것, 강계(江界)의 방수(防守: 변쌍의 방어)를 변통시킬 것 등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807년 평안북도암행어사로 근무 중 뇌물을 받아 군명(軍命)을 욕되게 하였다는 이유로, 사헌부장령 임업(任㸁))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충청도 대흥군(大興郡)에 유배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1827년 대사간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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