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이중(彛仲). 이경우(李慶遇)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중인(李重寅)이다. 아버지는 이이정(李耳鼎)이며, 어머니는 조진겸(趙鎭謙)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성균관 유생으로 도기(到記)의 강(講)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전시에 직부(直赴)하여, 그 해 증광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원정언·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805년 평안북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가산(嘉山)의 갈마창(渴馬倉)을 개선하여 고칠 것, 선천(宣川)의 탄도(炭島) 목장을 가도(椵島)로 이정(移定)할 것, 강계(江界)의 방수(防守: 변쌍의 방어)를 변통시킬 것 등을 상소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1807년 평안북도암행어사로 근무 중 뇌물을 받아 군명(軍命)을 욕되게 하였다는 이유로, 사헌부장령 임업(任㸁))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충청도 대흥군(大興郡)에 유배당하였다. 유배에서 풀려난 뒤 1827년 대사간으로 다시 등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