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우(伯雨), 호는 자하(紫霞)·만연(曼衍)이다. 1728년(영조 4) 병란을 일으킨 이인좌(李麟佐)의 조부이다.
1678년(숙종 4) 문재(文才)와 조행(操行)이 뛰어나고 지려(智慮)와 용력(勇力)이 뛰어나, 오정위(吳挺緯)와 이원정(李元禎)의 추천으로 곧바로 6품에 발탁되어 호남의 수령(守令)직을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호남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잘 다스린 공적이 인정되어, 영의정 허적(許積)의 추천으로 평안도도사(平安道都事)에 임명되었다. 이 때 숙종은 이운징이 쓸 만한 재주가 있다고 하여 남쪽 고을에서 발탁하여 임명한 것이니 모름지기 직무에 충실할 것을 특별히 유시하였다.
그러나 1680년(숙종 6) 허적의 서자 허견(許堅)과 복선군(福善君)을 추대하려는 역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도배당하였다. 1689년(숙종 15) 사헌부장령으로 다시 등용되어 집의·승지를 거쳐 강원도 관찰사·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1694년(숙종 20) 형 이의징(李義徵)과 악한 짓을 같이 하여 권세를 탐내고 화를 만들기를 좋아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 귀양조치 당하였다가 1699년(숙종 25)에 방귀전리(放歸田里)되었으며, 1710년(숙종 36)에 방송(放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