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장(汝長). 선조 때의 공신인 파곡(坡谷) 이성중(李誠中)의 현손(玄孫)이며, 이유심(李幼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명열(李命說)이다. 아버지는 이진방(李震昉)이며, 어머니는 유계(柳鷄)의 딸이다.
1678년(숙종 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89년에 사간원정언, 사헌부장령·헌납·집의를 역임하였으며, 1692년에는 홍문록(弘文錄)에 선발되어 홍문관의 부수찬·교리 등을 거쳐 벼슬이 승지에까지 이르렀다. 사헌부헌납으로 있으면서 당시 관료들의 사치하는 폐단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 숙종이 송시열(宋時烈) 등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자 이윤[景宗]을 세자로 책봉하고 장소의(張昭義)를 희빈으로 봉한 다음, 다시 그 해 5월에 민비를 폐하고 장희빈(張禧嬪)을 올리어 왕비로 삼으려 하였다. 이때 삼사(三司)의 직책에 있으면서 임금의 뜻에 아첨하고 순종하였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1694년에 울산으로 유배되었다가 1697년에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