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춘장(春長). 이목(李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항(李之恒)이고, 아버지는 목사(牧使) 이원구(李元龜)이며, 어머니는 이준구(李俊耉)의 딸이다. 형조판서를 지낸 백묵당(白默堂) 이익수(李益壽)의 형이다.
진사(進士)를 거쳐 1693년(숙종 19)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1696년 지평으로 처음 부임, 이어 정언·문학·수찬을 역임하였다. 1698년 경상도암행어사로 파견되어 염찰(廉察)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 이듬해 교리·헌납·집의를 역임한 뒤, 1700년 사간·부수찬·보덕을 지냈다.
이듬해 집의로 있으면서 희빈장씨(禧嬪張氏)의 사사(賜死)에 반대한 행부사직(行副司直) 이봉징(李鳳徵)을 처벌하는데 논의를 회피하다가 파직당하였다. 1702년 필선으로 다시 임명되어 보덕·겸필선을 거쳐 승지가 되었다.
1708년 좌승지·대사간을 거쳐 전라도관찰사로 나갔으나 창고에 남아 있는 곡물의 절반과 산성(山城)에 있는 군향(軍餉: 군에서 필요한 물품)을 적당하게 요량하여 나누는 일을 자신이 먼저 각 고을에 분부해 놓고, 이어 상급 관청에 장청(狀請: 일정한 서식을 갖추어 요청함)하였다가 추고(推考)를 당하기도 하였다.
1711년 승지·대사간·형조 참의를 역임하고 1716년(숙종 42)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로 근무중 임소(任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