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헌납, 보덕,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백(經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21년(경종 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전주
주요 관직
헌납|보덕|집의|경기도 관찰사|대사헌
정의
조선 후기에, 헌납, 보덕, 한성부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경백(經伯). 할아버지는 이정량(李廷亮)이고, 아버지는 이용(李墉)이며, 어머니는 정형진(鄭亨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생원을 거쳐 1753년(영조 29) 동생 이진형(李鎭衡)과 함께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57년 검열(檢閱)로 처음 부임하였다. 1761년 지평으로서 임금이 친국(親鞫)하는 일로 명령이 있었으나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겨 삭직당하였다.

1762년 헌납으로 재임명되었으나 사헌부지평으로 있으면서 협잡(挾雜)으로 계사(啓辭: 논죄에 관한 것을 왕에게 올리는 문서)를 꾸몄다 하여 또 다시 삭직당하였다. 1763년 장령으로 발탁되어 여러 해 동안 헌납·보덕·집의를 역임하였다. 1769년 사간으로서 문신의 제술(製述)에서 수위를 차지하였다.

1776년 정조가 즉위하고 혜경궁(惠慶宮)에게 존호(尊號)를 더하고 높일 때에는 대거(對擧) 승지를 맡아 보았다. 1784년(정조 8) 한성부우윤에 이르렀으나 재계(齋戒)하는 날을 맞이하여 도성안의 관부(官府)에서 산대를 설치하고 풍악을 연주한 일이 있었는데도 이를 능히 단속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파직당하였다. 그의 동생 이진형(李進衡)은 예조 참판·경기도 관찰사·대사헌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집필자
이상일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