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규(稚圭). 이면지(李勉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철상(李徹祥)이고, 아버지는 이장소(李章紹)이며, 어머니는 김이중(金履中)의 딸이다.
생원을 거쳐 성균관에 입학하여 1807년 제술(製述)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여 그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812년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겸문학으로 처음 부임한 뒤, 그 해에 통정대부로 가자(加資: 정3품 당상관 이상의 관직에 오름.)되었다.
1816년 이조참의, 겸보덕을 거쳐 다음해 가선대부로 가자되었다. 1820년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뒤에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됨.)되고 다음해 도승지·대사헌, 빈전당상,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1822년 대사헌, 예조판서·수원부유수·우참찬·장례원제조를 지냈으며 다음해 장례원당상·판의금부사·좌참찬, 비변사제조·이조판서·공조판서를 지낸 다음 1824년 상호군(上護軍)으로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