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중우(仲友). 이사관(李士寬)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함장(李諴長)이고, 아버지는 이수영(李壽嬰)이며, 어머니는 이영홍(李永弘)의 딸이다.
사마시를 합격하고, 1504년(연산군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로 재직 중 중종반정을 도운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1509년(중종 4) 성절사(聖節使) 서장관(書狀官)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그 뒤 1516년(중종 11) 남원부사에 제수하였다. 1518년(중종 13) 장단부사(長湍府使)로 재직 중 반정(反正) 때의 녹공(錄功)을 공훈기록에서 없애야 한다는 탄핵을 받았다. 1525년뒤 사간으로 재직하다 언관(言官)에 합당치 못하다는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그러나 1530년에는 순천부사(順天府使)로 재임하면서 피폐된 고을을 정상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1537년 찰리사(察理使)에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제수되었다가 그 뒤 강원도관찰사·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1년 천추사(千秋使)로 경사(京師)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도중에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