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주7이다. 절 북쪽에 깎아지른 듯한 바위가 있는데, 주1에 기린의 뿔이 이 바위에 걸렸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인각사라 하였다고 한다.
창건과 관련하여 두 가지 설이 있다. 권상로의 『조선사찰전서』에서는 643년(선덕여왕 12)에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고, 1963년 이도원의 『인각사중수기』에서는 642년(선덕여왕 11)에 의상(義相)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과 군위군청이 2002년부터 2009년까지 5차에 걸쳐 실시한 주2에서 거대한 사찰터와 통일신라 주3들이 발굴됨에 따라 적어도 통일신라 시기에는 인각사가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절의 연혁에 대한 문헌 기록은 고려 후기에 와서야 보인다. 1284년(충렬왕 10) 인각사는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一然)의 하산소로 지정되어 면모가 새롭게 변하였다. 이 때 왕명으로 근시 김용검(金龍劍)에게 절을 수리하도록 하고 밭 100여 경(頃)을 헌납하였다. 국사이자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일연이 주석하게 된 것을 계기로 총림법회(叢林法會) 등 대규모 불교 행사가 개최되면서 인각사는 선종의 중심 사찰로 부상하였다. 1289년(충렬왕 15) 일연이 인각사에서 입적하자 절 동쪽 언덕에 그 부도를 세웠다. 6년 후인 1295년(충렬왕 21) 왕명으로 민지(閔漬)가 저술하고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주4 새긴 보각국사비가 인각사에 건립되었다.
1362년(공민왕 11) 주10의 수장이 된 조계도대선사 서공(曹溪都大禪師諝公)이 인각사(麟角寺)에 무무당(無無堂)을 완성(完成)하고 총림법회를 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07년(태종 7) 자복사를 대체할 명찰(名刹) 83곳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후 별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가, 1555년(명종 10) 임고서원을 주5 인각사의 위전이 임고서원에 소속되었다.
1597년(선조 30)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방화로 절이 소실되고 보각국사비도 큰 손상을 입었다가, 1630년(인조 8)과 효종대인 1649~1659년에 중건되었다. 1677년(숙종 3) 80여 명의 주6이 참여해 극락전(極樂殿)을 세웠다. 1699년(숙종 25) 의흥현감 박성한(朴聖漢)에 의해 증축되었으며, 1721년(경종 1)에도 중수하였다. 1790년(정조 14) 30여 명의 승려가 참여해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1890년(고종 27) 보각국사 일연의 부도 자리에 조상의 묘를 쓰려는 황보(皇甫)씨의 침입을 받아 일연 비와 전각이 파괴되었다.
1911년 일제의 사찰령(寺刹令)에 따라 30개의 본사가 제정될 때 인각사는 은해사의 말사가 되었다.
1932년 대문을 세우고 '화산인각사(華山麟角寺)'라는 현판을 달았다. 1934년과 1958년에 각각 대웅전과 주8가 붕괴되었는데, 1963년 절이 중수되면서 이도원이 『인각사중수기』를 썼다.
1978년 명부전과 극락전을 보수하고, 1991년 요사채를 이전 건립하였다. 1991년 이후 2009년까지 지표조사 및 정밀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복원중이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국사전, 명부전, 주11 등이 있다.
군위 인각사지 전체가 1992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1965년 보물로 지정된 군위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가 있다. 이 탑비는 1153년(의종 7)에서 1155년 사이에 사승(寺僧) 죽허(竹虛)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모아서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왕희지 글씨를 얻으려는 문인들의 탁본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풍화, 인위적 파괴 등으로 비의 훼손이 매우 심하여 비문을 알아보기 어렵다. 남아있는 일연 비의 탁본들을 교감하여 근래에 복원비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
2008년 발굴조사 중에 금동병향로, 청동 정병, 청동 향합, 청동 이중합, 청동 반자 등 통일신라시대 불교의식 기구가 발굴되었는데, 2019년에 이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밖에도 법당 앞에는 문화유산 자료 삼층석탑이 있고, 정조탑 앞에는 유형문화유산 인각사 석불 좌상이, 미륵당에는 문화유산 자료 미륵당 석불 좌상이 있으며 모두 2002년 지정되었다.
2023년에 극락전이 대구광역시 문화재(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된 바 있다.
절 앞 길가에는 만월당(滿月堂)과 청진당(淸眞堂)의 석종형 주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