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할아버지는 찬성 임원준(任元濬)이고, 아버지는 임사홍(任士洪)이다. 예종의 딸인 현숙공주(顯肅公主)의 남편으로 1475년(성종 6) 숭덕대부(崇德大夫) 의빈부의빈(儀賓府儀賓)이 되었으며, 1485년 숭덕대부, 1492년 풍천위(豊川尉)가 되었다.
1478년 아버지 임사홍(任士洪)이 현석규(玄錫圭)를 배척하려다 실각하자 사면을 부탁하는 소를 올렸으며, 그 뒤에도 아버지가 정치적 위기에 빠질 때마다 여러 차례 상언을 통하여 옹호하였다.
무예가 있어 도총관(都楤官)으로 재직하였으나, 1493년 구사(丘史: 왕이 종친이나 공신에게 내린 관노비)의 역가(役價)를 받아들인 것을 비판한 정성근(鄭誠謹)을 무고하였다는 이유로 도총관에서 면직되었다.
문장을 좋아하여 성종으로부터 토지와 미포(米布), 편지가 자주 하사되는 등 총애를 많이 받았으나, 여자 문제로 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494년 진천의 양가녀(良家女) 존금(存今)을 첩으로 삼은 사건이 말썽이 되어 의금부에서 추국을 받아 강원도 통천(通川)에 부처되었다가 평해(平海)로 옮겨졌다.
유배 도중 병이 나 강릉 우계현(羽溪縣)으로 유배지가 변경되었다. 1495년 연산군의 명으로 복직되었으나, 곧 병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