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태숭(泰嵩), 호는 양헌(陽軒). 임정수(林貞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임식(林植)이고, 아버지는 병마절도사 임득의(林得義)이다.
1635년(인조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주서가 되었다.
주서 재직 중 병자호란이 일어났으나, 인조의 남한산성 피신에 호종하지 못하였다. 1638년 홍문록(弘文錄)에 입록되었으며, 이어 수찬·지평이 되었다. 이듬해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었으며, 헌납·세자시강원문학을 거쳐 1642년 교리가 되고 지제교(知製敎)로 선임되었다.
이듬해에 이조좌랑이 되었으나, 왕이 전랑이 자기 후임을 추천하는 낭천법(郎薦法)을 혁파하라고 했는데도 성초객(成楚客)을 전랑으로 추천한 것 때문에 삭직되었다. 그러나 1646년 다시 수찬이 되었으며, 부응교·사간·집의를 역임한 후 1649년 승지로 승진하였다.
이어 전라감사가 되었으나, 아내의 상(喪)으로 임지로 떠나지 않아 추국당했으며, 1651년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