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신지(身之). 형조참의 임순원(任舜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임수관(任守寬)이고, 생부(生父)는 임성(任城)이며, 어머니는 심득행(沈得行)의 딸이다. 임선(任琁)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1791년(정조 15) 왕의 수원 환차(還次: 행차가 돌아옴) 때 유생과 무사를 시험보았는데, 유생 중 수석을 차지하여 전시(殿試)에 직부(直赴)하는 혜택을 받았으며, 1794년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해 부수찬과 교리가 되었다.
이듬해 자전(慈殿)의 회갑연 때 경모궁(景摸宮) 친향대축(親享大祝)을 담당한 상으로 가자(加資)되었으며, 1798년에는 이천부사·승지를 거쳐 이조참의를 지냈으며, 1804년 예방(禮房)승지로 재직하면서 정순대비(貞純大妃)를 위한 상호도감(上號都監)에서 일한 공으로 가자되었다.
1813년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에 갔다 왔으며, 이 후 여러 차례 대사간에 임명되었다. 1819년 공조판서가 되었으며, 1822년가순궁(嘉順宮)이 졸하자 원소제조(園所提調)가 되었으며, 곧 이어 부묘도감제조(祔廟都監提調)로서 활동하였다. 1823년 형조판서가 되었고, 그 뒤 한성부판윤·공조판서·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828년 지중추부사로 재직 중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