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천주(天胄). 임윤(任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서 임국로(任國老)이고, 아버지는 판서 임취정(任就正)이며, 어머니는 경시제(慶時제)의 딸이다.
1616년(광해군 8)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가 되었으며,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 논의에 참여하여 국모로 대접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 뒤 정언·시강원사서를 역임하였다. 1619년 문한(文翰)의 자질을 갖춘 인물로 이이첨(李爾瞻)의 추천을 받았으며, 이어 이조좌랑·겸문학을 거쳐 이조정랑이 되었으나 마음대로 자기 당류를 심었다는 것으로 관직이 교체되었다.
인조반정 직후인 1623년 폐모 논의 때 국모로 대접할 수 없다는 견해를 내었다는 것으로 멀리 유배되었다. 1628년 반역을 도모한 유효립(柳孝立)의 옥사 때 다시 진도(珍島)로 유배되어 위리안치(圍離安置)되었다. 이듬해 후금(後金)과 통하여 역모를 꾀한 양경홍(梁景鴻) 사건에 관련되어 심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