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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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에서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군현으로 한사군(漢四郡)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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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임둔군은 중국 한나라에서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군현으로 한사군의 하나이다. 서기전 108년에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임둔의 옛 땅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서기전 82년에 4군을 통폐합할 때 서북쪽의 현도군에 통합되었다. 『무릉서』에 동이현에 치소가 있었으며 속현은 15개라고 하였다. 서기전 75년에 낙랑군에 동이·불이·잠대·화려·야두미·전막·부조 등 7현이 병합되었고, 나머지 8현에 대해서는 명칭을 알 수 없다. 대개 함흥 이북지방에 위치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지만 임둔군을 포함한 한사군이 요동·요서지역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

목차
정의
중국 한나라에서 고조선의 옛 땅에 설치한 군현으로 한사군(漢四郡)의 하나.
개설

서기전 108년에 한나라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정벌하고 임둔의 옛 땅에 설치하였다고 한다.

내용 및 변천

임둔군은 한사군이 설치된 지 25년 만인 서기전 82년에 실시된 4군 전체에 걸친 통폐합으로 서북쪽의 현도군(玄菟郡)에 통합되었다.

그 뒤, 서기전 75년에 현도군의 치소(治所)가 토착세력의 침공을 받아 혼하(渾河) 상류인 신고구려현(新高句麗縣)으로 옮겨지자, 앞서 현도군에 합쳐졌던 옛 임둔군의 부조(夫租, 沃沮) 이하의 이른바 영동7현(嶺東七縣)은 낙랑군(樂浪郡)에 환속되었다.

『한서(漢書)』 지리지에 보이는 낙랑군의 속현이 25현에 달하는 것은 옛 진번군(眞番郡)의 남은 현과 임둔군의 남은 현을 포함했기 때문이다.

임둔군의 속현에 대해서는 『한서』 무제기(武帝紀) 원봉(元封) 3년조에 대하여 신질(臣瓆)이 인용한 『무릉서(武陵書)』에 보면, 임둔군의 치소는 동이현(東暆縣)으로 장안(長安)으로부터 거리가 6,138리(里)이고 현은 15개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임둔군의 속현은 15현이고 치소는 동이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현 중 뒷날 낙랑군에 병합, 편입되어 동부도위(東部都尉) 7현을 형성한 부분 외에 방기된 다른 현은 그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진 7현은 『한서』 지리지에 나타난 확대된 낙랑군 속현 중에서 추출할 수 있다. 동이 · 불이(不而) · 잠대(蠶台) · 화려(華麗) · 야두미(邪頭味) · 전막(前莫) · 부조 등이다.

임둔군의 위치와 강역에 대해서는 대개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

첫째는 지금의 대관령 이동인 강릉 일대의 지역이라는 설이다. 이는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 지리지 등의 지리서에 명주(溟州), 즉 강릉은 본래 예국(穢國)으로 한나라 무제가 우거(右渠)를 토멸하고 4군을 정하였을 때 임둔군이 되었다는 기록에 근거한다.

둘째는 대관령 동서의 땅, 즉 강원도의 대부분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은 조선 숙종 때 이세구(李世龜)가 제창한 설로서, 임둔은 강릉을 중심으로 대관령 동서의 강원도 여러 군을 포함하여 서로는 관서 등지의 낙랑군과 연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경기 서부에 비정하는 설이다. 정약용(丁若鏞)『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의 「임둔고」에서 열수(列水)를 지금의 한강으로 보고 임진현(臨津縣)을 임둔군의 중심으로 보았다.

넷째는 지금의 경기 · 강원도에 걸쳐 있다는 설이다. 이것은 『증보문헌비고』의 설로 「여지고(輿地考)」 1 한사군조에 근거한다.

다섯째는 지금의 함경도 남부와 강원도에 비정하는 설이다. 이것은 일인학자 시라도리(白鳥庫吉)가 「한의 조선사군강역고」에서 말한 것이다.

여섯째는 반도의 동북해안의 땅으로 지금의 함경남도 전체에 비정하는 이병도(李丙燾)의 주장이다. 즉, 『한서』 무제본기의 4군을 설치한 기사의 끝에 붙인 신질이 인용한 『무릉서』에 “임둔군치 동이현은 장안으로부터 6,138리이다.”라는 것에 근거해 동이현의 장안으로부터의 거리를 추산한 결과, 그 위치가 대체로 지금의 함경남도 남단에 해당된다고 하였다.

한편, 고구려시대 천정군(泉井郡)의 속현인 동허현(東墟縣)이 동이현의 ‘동이’와 음이 비슷하므로 지금의 함경남도 덕원군에 비정하였다. 또한 『무릉서』에 임둔군의 속현은 15현이라고 한 기록에서 서기전 75년 임둔군을 폐하고 낙랑군에 속한 7현을 각각 함흥 · 안변 부근으로 비정하였다.

그리고 명칭을 알 수 없는 8현을 막연히 함흥 이북지방에 있었으리라 추측함으로써 임둔군의 함경도설을 주장하였다. 한편, 이러한 설과는 달리 임둔군은 물론, 한사군 모두가 요동(遼東) · 요서(遼西)지역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한사군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임둔군고(臨屯郡考)」(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韓國古代史硏究)』, 박영사, 1976)
『滿鮮史硏究』-上世篇-(池內宏, 祖國社, 1951)
「漢の朝鮮四郡疆域考」(白鳥庫吉, 『朝鮮史硏究』, 白鳥庫吉全集 3, 岩波書店, 1980)
집필자
이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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