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왕산사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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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왕산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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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왕산사의 사찰터. 시도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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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왕산사의 사찰터. 시도기념물.
개설

조선후기 문헌에 따르면 가락국 제 10대 왕인 구형왕이 기거하던 수정궁터에 지어진 사찰이다. 구형왕의 영정, 의복 등이 보관되어 있다고 전해지며 사적인 '전구형왕릉'과 관련된 사찰로 알려져 왔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조선 후기 문헌 자료와 발굴조사를 종합할 때 왕산사의 창건시기는 대략 17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19세기 중반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경상도 산음현 산천조 왕산에 "현 서쪽 10리에 있다.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은 모두 층계로 되어 있다.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해진다"라고 되어 있고, 불우조 왕대암에 "왕산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18세기 영조 때 편찬된 『여지도서』에는 산청현읍지에 왕산에 있던 왕대암은 없어졌다고 하고 새로 현의 서쪽 30리에 왕산사가 있다고 하였다. 왕대암이 폐사되고 그 자리에 왕산사로 이름을 바꿔 중건했는지 아니면 왕대암이 폐사되자 인근에 왕산사란 절을 새로 지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대동지지』 산청조에는 "왕산은 서북쪽 20리에 있다. 가야국 구형왕의 능은 왕산사 뒤편에 있다. 돌을 쌓아 언덕을 만들었는데 사면에 모두 층계가 있다. 왕산사는 구형왕이 머물던 수정궁이다. 구형왕의 사당은 산 아래에 있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은 내용은 『산청군읍지』에도 보인다. 왕산사란 절만 있다가 이곳이 나중에 가락국 구형왕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것 같다.

한편 발굴조사에 의하여 출토된 암막새의 명문에 '강희24년 을축'. '강희 25년 병인'이라는 기년명을 통해 왕산사가 적어도 1685년(강희 24), 1686년(강희 25)에 세웠졌거나 중건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왕산사기』에는 왕산가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50년(순치 7)에 중건되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출토된 명문기와의 연대와 상당히 부합된다. 발굴조사에서 왕산사보다 선행하는 건물지가 조사되어 왕산사 이전의 왕대암의 존재도 유추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현재 '전구형왕릉'으로 알려진 적석시설 역시 18세기 이전까지는 단순히 왕릉 또는 신라 왕릉으로 알려져 정확한 무덤의 주인에 대한 실체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대동지지』 편찬 이후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18세기에 왕산사가 구형왕릉의 원찰로 등장하는 것은 17세기 중엽부터 부계친족 사회의 문중 결속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로서 족보편찬, 문중 서원 건립 등 다양한 문중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는 사회분위기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발굴조사에서 각석 3개가 조사되었는데, 그 중에는 "가락국 구형왕릉이 있던 곳이다. 숭정 후 세전 지난 정묘년(1807) 삼월에 기록한다"라고 적혀 있다. 각석의 기록 시기는 『대동지지』의 편찬시기(1864)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에 김정호는 이 각석의 내용을 참고하여 『대동지지』를 편찬한 것으로 생각된다. 왕산사가 폐사된 시점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1846년경 "유생들이 왕산사를 헐어 그 목재로 마을에 서당을 세우려 한 일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점에는 이미 왕산사에 아무도 기거하지 않았거나 사찰의 영향이 거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가락삼왕사적고(駕洛三王事蹟考)』
『산청 왕산사지 문화재지표조사 보고서』(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2009)
「산청 왕산사지 시굴조사」(김정률, 『동아문화』 11, 2011)
「금관가야 '구형왕릉' 전승과 역사화 과정」(권덕영, 『대구사학』 8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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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조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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