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이 설립한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으로, 한성에 거주하던 양현당(養賢堂) 김씨가 사재를 들여 설립하였다. 김씨는 교장이 되어 여학생을 모집하고, 이들에게 국문·한문·산술·침선(針線)·여홍(女紅) 등의 교과목으로 근대적인 신교육을 실시하였다.
설립자이면서 교장인 김씨는 정선여학교의 입학자 중 의지할 곳이 없는 학생들을 먹여주면서까지 여성교육에 열성이었다. 그리하여 재정상 어려움이 많아 학교 운영에 필요한 재정적 보조를 학부에 청원한 일도 있었다.
정선여학교는 승동에 위치하고 있어 승동여학교(承洞女學校)라고도 불렸다. 1901년에 학교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염출(捻出 : 비용 따위를 어렵게 걷거나 모음)을 위해 교사(校舍)를 일본인에게 담보[典債]하고 돈을 빌렸는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채주(債主)인 일본인이 학교를 닫고 학생들을 쫓아내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교장인 김씨는 여학생들을 대동하고 학부(學部)로 가서 교비를 지원하지 않아 일본인에게 교사까지 빼앗겼다는 사실을 들어 학부에 항의한 일도 있다. 교사를 일본인 채주에게 빼앗기게 된 정선여학교는 1902년에 교사를 계동에 있는 한 공청(公廳)으로 옮겼다.
이때 황실에서 정선여학교의 운영에 필요한 운영비조로 1만 량을 하사하여 한국의 여성교육을 황실에서 지원하게 되었다. 정선여학교는 설립자이자 교장으로서 학교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던 양현당 김씨가 1903년 3월에 사망하자 본교의 운영을 이어받을 자가 없어 자동적으로 폐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