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온양(溫陽). 자는 성서(聖瑞), 호는 창곡(蒼谷). 정현(鄭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지승(鄭之升)이고, 아버지는 정회(鄭晦)이며, 어머니는 광주정씨(光州鄭氏)로 헌납 정이주(鄭以周)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46년 지평에 임명되었으나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해도 나오지 않아서 파직되었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한 뒤 사헌부지평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 뒤 정언을 거쳐 장령에 임명되었으나 정언으로 있을 때 사사로이 형장(刑杖)을 가하고 협박한 적이 있다는 사간원의 탄핵을 박고 파직당하였다.
1654년 필선(弼善)으로 다시 등용되고 이 후 장령을 거쳐 이듬해 강원도 추쇄어사(推刷御史)에 임명되었다. 1656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를 다녀왔으며, 이듬해 승지를 거쳐, 이어 헌납·장령·낭청을 역임한 뒤 1659년 종성부사(鍾城府使)로 나갔다. 1661년 승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