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년(고종 18) 함신진(咸新鎭: 현, 평안북도 의주군) 방수장군(防戍將軍)으로 몽골의 살례탑(撒禮塔)[몽골명: 살리타이, 사르타이]가 침입해오자 부사 전간(全僩)과 함께 싸우지 않고 항복하고, 몽골군의 향도가 되어 삭주(朔州) 선덕진(宣德鎭: 현, 평안북도 정평군)도 항복하게 하였다. 조숙창은 예전 몽골군 합진(哈眞)[몽골명: 카진]과 형제맹약(兄弟盟約)을 체결한 조충의 아들임을 내세웠고, 몽골도 이를 선전하며 다른 성들의 항복을 권유하였다. 이후에도 조숙창은 계속 몽골군의 입장에 서서 그들이 최우(崔瑀) 정권과 강화를 체결할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담당하였다. 1232년(고종 19) 강화천도(江華遷都) 직전 함신진 부사 전간이 사람들을 이끌고 섬으로 도망친 사건을 몽골측 요구로 조사하기도 하였다.
몽골과 강화를 체결한 공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승진되어 몽골에 가서 사신 저고여(著古與)의 살해사건을 밝히는 표문(表文)을 올렸다. 이듬해 1233년(고종 20) 상장군(上將軍)에 올라 시어사(侍御史) 설신(薛愼)과 함께 칭신(稱臣)하는 표문을 올렸다. 1234년(고종 21) 서경(西京)에서 발발한 필현보(畢賢甫)의 난에 연루되어 필현보와 더불어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