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신여(愼汝). 할아버지는 우의정 조상우(趙相愚)이며, 아버지는 첨정 조태수(趙泰壽)이다.
사마시에 합격한 뒤 영소전참봉(永韶殿參奉)이 되고, 세자익위사시직·호조좌랑을 거쳐 함양군수·청풍부사·능주목사 등을 지냈다. 1728년(영조 4)이인좌(李麟佐)의 난 이후 청주목사가 되어 피폐한 민심을 잘 다스리고 기민(飢民) 9,000여 명을 구제하여 안정시켰으므로 충청감사와 어사가 포계(褒啓)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특히 사람됨이 세심하여 소홀함이 없었고 소송사건을 공명하게 판결하여 명망이 높았다. 글씨를 잘 써서 전서(篆書)·주서(籒書)·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났고, 그림에도 능하였다. 저서로 『계방일록(桂坊日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