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천우(天佑). 조중려(趙重呂)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종저(趙宗著)이고, 아버지는 조의징(趙儀徵)이며, 어머니는 유명재(柳命才)의 딸이다.
1712년(숙종 39) 생원으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717년 주서가 되어 숙종의 정유독대(丁酉獨對)의 내용을 밝힐 것을 상소하고 사서를 역임하였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한 뒤 정언·지평 등을 지내면서 소론으로서 신임사화 때에 노론을 배척하는 데 가담하였다.
1724년 교리·부수찬·정언·부교리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영조의 등극으로 노론이 집권하자 삭직당하였다.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부수찬에 복직되어 검토관을 겸하였고, 사은진주사(謝恩陳奏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발탁되어 청나라에 가서 이듬해 돌아왔다.
이 후 수찬·부수찬·집의·사간 등을 지내고 1734년 승지에 이르렀고, 그 해 우부승지로 있으면서 대간으로부터 사대부의 규모가 없다고 배척을 당하였다. 의주부윤·동지총관(同知摠管)을 역임하였고, 1736년에는 다시 승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