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원래 전라남도 광주군 서방면 동계리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인 1934년 무등산 자락에 위치한 증심사로 옮겨 봉안했다. 불교의 진리를 형상화한 법신 비로자나불로, 높이 90㎝이다. 현재 광배(光背)와 대좌(臺座)는 남아있지 않다.
균형 잡힌 신체와 안정감 있는 자세가 돋보이는 신라 하대의 철조비로자나불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가 높고 뚜렷하며,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螺髮]이 촘촘하게 붙어있다. 눈·코·입 등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얼굴은 입체감이 알맞게 드러나며,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어서 온화하게 보인다. 어깨를 펴고 허리를 세우고 있어서 체구가 작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형상이다.
상체는 양감이 별로 없어서 밋밋하게 보이며 허리가 긴 편이지만 결가부좌를 한 두 다리의 폭이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두껍지도, 얇지도 않으며 두 팔과 다리의 굴곡을 드러내준다. 좌우 대칭에 가깝게 양 어깨에 걸쳐진 옷은 자연스럽게 팔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으며, 양 팔에 걸쳐진 옷자락은 일정한 간격으로 옷 주름을 이루고 있다. 폭 넓은 다리는 두께가 얕고, 양감은 별로 없다. 다리 위의 옷 주름도 골이 넓고 투박하지만 비교적 자연스럽게 보인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는 형태의 수인을 지권인(智拳印)이라 하며 이는 비로자나불의 특징적인 도상이다. 『화엄경(華嚴經)』의 주인이자 법의 본체인 법신(法身) 비로자나를 상징하는 지권인이 이 증심사 비로자나불좌상에서는 좌우가 바뀌었다. 즉 왼손이 오른손 검지를 감싸 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과는 반대로 되어 있다. 제작과정의 착오로 보인다. 신라하대에 유행한 철불의 경우 겉틀을 떼어낸 흔적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거칠게 남아있는데, 이 불상은 겉틀의 흔적이 팔과 배 부분에서만 보여서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광주 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9세기 후반의 조각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안정된 자세와 균형 잡힌 신체 비례, 자비로운 얼굴 묘사가 돋보이는 상이다. 9세기 중엽에 조성된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962년 지정),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963년 지정)과 비교했을 때, 조각 수준이나 기술이 상당히 발달된 예로 눈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