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280㎝. 마을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 불상이 1930년대까지 동네 야산에 묻혀 있었으며, 당시 머리만 노출되어 있었던 것을 미륵사로 옮겨 현재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거대한 자연석을 다듬어 앞부분에는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은 머리를 제외한 목 아래를 그대로 두어 마치 마애불처럼 만들었다. 자연석 자체가 원래 거대했던 까닭에 조각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주로 머리와 상체에 중점을 둔 조각 수법은 상주 복룡리 석불좌상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하반신 아래는 두루뭉술하게 조각하여 바위 덩어리의 느낌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큰 암벽에 유사한 방식으로 조각한 것으로는 안동 이천동 마애불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신라 하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시대에 발달한 조성법이다.
미륵사 석불좌상은 워낙 마모가 심해서 세부를 알아보기는 어렵지만 괴량감을 충실히 나타낸 것은 분명하다. 머리에는 크고 분명하게 육계가 솟아 있고, 굵고 납작한 나발의 흔적이 있으나 현재는 대부분 마멸되었다. 이목구비의 윤곽이 깊고 뚜렷하게 남아있어 원래는 입체감이 두드러지는 상호였음을 알 수 있다. 백호(白毫)의 흔적은 보이지 않으나 굵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잘 남아있다.
신체는 어깨가 넓어 장대하게 보이지만 압도하는 규모 때문이며, 어깨와 가슴은 평면적이며 입체감이 없다. 어깨에서 아래로 흘러내린 통견의 옷 주름은 평행선을 이루며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렸고, 가슴에는 군의를 묶은 띠가 희미하게 보인다. 어깨 위를 옷자락이 살짝 덮고 있으며 가슴을 드러내고 있어서 상체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팔과 손 모두 잘 보이지 않고 입체감이나 사실적인 묘사도 없다. 손가락이 결실된 왼손으로 옷자락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오른손은 배 가까이 두었으나 두 손 모두 분명하지 않다. 결가부좌한 두 다리의 아래 부분도 일부 떨어져 가슴 아래는 거의 조각을 하지 않고 자연석을 최대한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측면과 뒷면에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정면 상체 위주의 조형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석불로 머리와 어깨, 가슴을 중심으로 그 아래 신체와 뒷면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바위의 모양새를 최대한 활용하여 정면 위주로 조각한 점, 굵은 각선의 옷 주름 처리, 남원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에 버금가는 입체감이 강한 이목구비 묘사에서 고려 전기의 조각으로 판단된다. 안동 이천동 마애불처럼 머리만 따로 만들어 올린 마애불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유사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전북 지역 일대의 고려 조각으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