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두산 마애여래 입상 ( )

조각
유적
문화재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견두산(犬頭山)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높이 3.2m의 마애불. 시도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견두산(犬頭山)에 있는 고려시대 에 조성된 높이 3.2m의 마애불. 시도유형문화재.
개설

2003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높이 3.2m.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에 있는 신덕마을 뒤편 견두산 정상 가까운 곳에 5m 높이의 암벽을 깎아서 만든 여래입상이다. 원래 산 이름은 호두산(虎頭山)이었는데, 정조와 순조 대에 걸쳐 전라감사였던 이서구가 현재의 견두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마애불 관련 기록이나 명문이 없어 산의 이름을 따라 견두산 마애불로 명명되었다. 암질이 거칠고 딱딱해서 조각하기 쉽지 않은 것에 비해 얼굴과 상체는 세부가 잘 표현되었다. 무릎 아래는 암벽이 깨져 떨어져 나갔다.

내용

남아있는 높이가 약 3.2m에 이르고 어깨 폭도 78㎝에 이르는 대형의 마애불이라서 고려시대 전국적으로 유행한 암벽조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무릎 이하 부분의 바위 표면이 떨어져 원래의 모습과 크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연화좌를 밟고 선 모습으로 생각된다. 머리 주위를 둥글게 파서 원형의 두광을 만들었고 신체 주위도 야트막하게 파내 신광을 만들었다. 광배 위쪽 바깥으로 깊이 판 흔적이 남아있어서 지붕 같은 목조 구조물을 끼워 넣어 비바람을 막기 위한 가리개로 썼던 것으로 보인다.

상호는 둥글넓적하고 원만한 모습이며 머리는 머리카락의 흔적이 없는 민머리에 육계가 명확하게 솟았다. 이마와 머리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해서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이는 것은 고려시대 불상에서 흔히 보이는 표현이다. 이마 한가운데 작은 점 모양의 백호(白毫)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어 여래의 신체적 특성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암벽의 석질이 조각하기 좋은 편이 아니라서 아래 옷 주름 선처럼 삼도 역시 선이 거칠고 자연스럽지 않다.

옷이 두꺼운 편은 아니지만 섬세하게 나타내기 어려운 석질 때문에 신체의 굴곡과 양감은 보이지 않는다. 어깨가 넓고 신체가 장대하며 편단우견의 법의를 입었다. 왼쪽 어깨에 걸친 법의는 오른쪽 팔 아래로 ‘U’자형의 주름을 이루며 흘러내렸는데 암질 탓에 각선이 유려하지는 않다. 주목되는 것은 수인이다. 두 손을 가슴 위로 들어 올려 바깥쪽으로 벌려 설법인을 했다. 두 손 모두 손목을 밖으로 꺾어 설법을 하는 자세를 취한 도상은 멀리 인도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하대 이후에 나타난다. 특히 고려 불화 중에서 아미타불의 도상과 관련이 있어 도상적 친연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충청도, 전라도 일대 산의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과 비슷한 저부조의 마애불로 육계가 뚜렷한 민머리, 튼실한 신체, 설법인에서 고려 시대의 조각으로 판단된다. 견두산 마애불은 고려시대 남원 지역은 불교문화읙 거점 중 하나로, 노적봉 마애여래좌상(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99년 지정), 여원치 마애불상(전북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 등 수점의 마애불이 현전한다. 견두산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시대 남원 지역 불교 신앙의 일면을 보여주는 대표적 마애불 중 하나로 중요하다.

참고문헌

『마애불』(문명대, 대원사, 2003)
「고려시대 마애불의 조형성 연구」(이성도, 『미술교육논총』24, 한국미술교육학회, 2010)
집필자
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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