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불화.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43.5㎝, 가로 55.9㎝. 일본 세이카도[靜嘉堂] 소장.
화면을 상하 2분하여 위에는 지장보살을 크게 묘사하였다. 아래에는 사자(使者)와 판관·시왕,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범천·제석천·사천왕 등 협시를 대각선으로 배치하였다.
이러한 구도는 중앙의 지장보살에게로 보는 이의 시선을 유도하는 시선 집중 효과를 주고 있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인물들을 크게 묘사하여 오행감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림의 전면에 공간을 두고 양 협시 사이를 좁게 비워 예배자로 하여금 지장보살을 우러러보게 하는 효과도 내고 있다.
둥근 두광과 전신광을 배경으로 하여 반가좌하고 있는 지장보살은 둥근 얼굴에 앳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손은 들어 투명한 보주(寶珠)를 들고 한 손은 무릎 위에 놓았다. 머리에 두른 두건은 검은 천에 금니로 원문을 그린 것으로서 넓게 어깨까지 내려왔다.
그 모습은 베를린동양미술관 소장의 지장보살이나 네즈미술관[根津美術館] 소장의 지장보살, 1320년(충숙왕 7년) 작 「아미타구존도」의 지장보살 등이 쓰고 있는 두건과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부의 협시들은 본존과 대조적으로 작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들 사이에서도 두광을 지닌 범천·제석천·사천왕·도명존자·무독귀왕은 좀더 크게 묘사하여 권속 사이의 위계를 느끼게 해 준다. 특히, 옅은 살색으로 표현한 범천·제석천은 중앙으로 돌출하여 마치 이들이 주요 협시인 것처럼 보인다.
시왕은 갑옷을 입은 제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을 제외하고는 모두 홀(笏)을 든 문관의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서로 닮은 표정으로 인하여 개성이 결여되었다. 이러한 특징 이외에도 여러 가지 점에서 베를린동양미술관 소장의 지장보살도와 흡사한 점이 많이 엿보인다.
즉, 지장보살의 자세라든지 단정하면서도 호리호리한 체구, 앳된 얼굴 표정, 금니로 수놓은 두건의 형태, 가사의 착의법, 가사 가장자리의 초문(草文) 그리고 협시들의 배치와 표정 등에서 서로 흡사한 점이 많다. 그래서 혹시 이 두 그림이 같은 유파에 속하는 화사에 의하여 그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반면에 화면 중앙에 묘사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상징하는 금모 사자(金毛獅子)가 생략된 점이나 녹색과 홍색 그리고 금색의 주조색이 조화되어 이루는 좀더 화사한 분위기, 보다 앳된 얼굴 표정, 협시들의 감소된 활기 등으로 좀더 온화하고 밝고 차분한 분위기를 풍겨 주는 점은 다소 변모된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