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론은 인간의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당위를 전제로 앎과 실천의 관계를 다루는 유교 이론이다. 『서경』에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동이 오직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에 부합하는 것이 지행합일론이다. 실천으로 드러난 앎이 과연 참다운 앎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선지후행론(先知後行論)이고, 앎과 실천이 상호 보완, 병진해야 한다는 것이 지행병진론(知行竝進論)이다. 우리나라의 성리학은 중국의 정자와 주자를 따르기에 대체로 정주의 선지후행론을 따르고 있다.
인간의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당위를 전제로, 첫째 앎과 실천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둘째 앎과 실천의 불일치가 왜 일어나는가, 셋째 앎과 실천의 불일치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앎과 실천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를 대표하는 경전의 내용은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행동이 오직 어려운 것이다(非知之艱 行之惟艱).”라고, 『서경』 열명편(說命篇)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의로운 일을 보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한 공자의 말과 같이 실천이 앎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실천력과 용기에 있어서는 뛰어나지만, 반성적인 앎에 있어서 부족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실천은 앎과 실천의 양면적 조화와 성장에서 가능한 것이다.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당위적 원칙은 현실에 있어서는 “앎에는 정밀함과 성김이 있고 실천에는 깊고 얕음이 있기(知有精粗 行有淺深)”(性理大全) 때문에 상호 보완과 병진을 통해 성취되는 것이다.
여기서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에 부합하는 것이 일반적 지행합일론(知行合一論)의 의미이다. 실천으로 드러난 앎이 과연 참다운 앎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치중한 것이 선지후행론(先知後行論)의 의미이며, 앎과 실천이 상호 보완, 병진해야 한다는 것이 지행병진론(知行竝進論)의 의미이다.
선지후행론은 주로 송대 성리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었다. 사변적 성격이 강한 성리학에 있어서는 선진(先秦)의 지행병진론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앎과 실천의 선후 문제에 있어서 앎이 실천보다 먼저임을 내세운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앎이 실천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중요성은 행동이 앎보다 더하다.
“앎과 행동이 항상 서로 따르는 것은 마치 눈이 발이 없으면 다닐 수 없고 발도 눈이 없으면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선후로 따지면 앎이 앞서고 경중을 따지면 실천이 중요하다.”(性理大全 卷48 朱子語), “치지와 역행은 서로 발현시켜 주는 것이나, 앎이 당연히 앞선다. ……앎이 실천보다 앞서는 것은 참으로 불변의 진리(致知力行 互相發也 然至當在先……知之在先 比固不可易之論)”(性理大全 卷48 張栻語)라는 것이다.
이를 종합해 보면 성리학의 선지후행론은 단순히 주지주의(主知主義)의 입장에서 실천을 경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인간의 실천과 행동에 있어서 오류는 행동 그 자체보다는 행동이 나온 인간의 내면적 지성과 판단력의 오류와 부족에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행합일론은 명나라의 왕수인(王守仁)에 의해 주장되었다. 일반적으로 그의 지행합일론을 앎과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단순한 당위론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으나 그것이 그의 지행합일론의 본령은 아니다.
물론 왕수인도 성리학의 경우와 같이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르는 것이다.”라고 앎과 실천의 불일치는 참다운 앎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다. 인간의 지성과 도덕적 실천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은 왕수인의 독창적 견해가 아닌 일반적인 견해다.
왕수인의 지행합일론의 안목은 앎과 실천이 본래 한 내용의 양면적 요소임을 망각하고 앎과 실천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요소로 보는 견해를 거부한 데 있다. “앎과 실천은 원래 두 글자로 한 가지 공부를 말한 것이다.”(傳習錄), “앎은 실천의 시작이요, 실천은 앎의 완성”(傳習錄)이라고 하였다.
물론 왕수인도 현실 속에서 앎과 실천의 불일치로 나타나는 여러 양상들을 모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정주학에서 그 불일치의 해소를 진지(眞知)의 획득에서 추구한 데 대해, 그 원인을 인간의 양지(良知)의 발현을 방해하는 사욕(私慾)에 두었다.
그러므로 왕수인에게 있어서 앎과 실천의 일치는 인간 본연의 양지를 그대로 실현하는 것, 즉 치양지(致良知) 이외에 다른 것은 아니다.
조선조 이후에 성립된 우리 나라의 성리학은 중국의 정주(程朱)를 종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정주의 선지후행론을 따르고 있다. 주희(朱熹)를 숭상해 동방 주자라는 칭호를 받은 이황(李滉)은 앎과 실천을 수레의 양 바퀴와 새의 양 날개와 같아 어느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는 주희의 말을 들어, 앎과 실천의 일치를 주장하면서도 앎과 실천의 선후 문제에 있어서는 진지가 실천과 행동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희의 선지후행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이황의 문인 이덕홍(李德弘)은 「지행변(知行辨)」에서 앎과 실천의 관계를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관계(二而一一而二)”로 이해한다. 이 관계를 그는 꽃을 꺾는 데 비유하였다.
꽃을 보는 것과 꽃을 꺾는 것은 두 가지 일이지만 꽃을 보는 것이 꽃을 꺾기 위한 것이라면 꽃을 보는 것과 꺾는 것은 한 가지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앎과 실천은 두 가지 일이지만 앎이 실천을 위한 것이라면 앎과 실천은 한 가지 일이라고 하여, 그는 앎과 실천을 일원적 이원론의 관계로 이해하고 있다.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인 최한기(崔漢綺)는 「지행선후(知行先後)」에서 앎과 실천의 선후 문제와 관련해 처음에는 실천을 통해 앎이 확충되고 앎이 이미 확충된 뒤에는 앎을 통해 실천해 나가는 선행후지 · 선지후행의 견해를 취하고 있다.
인간은 처음 태어날 때는 별다른 지식을 갖지 못하고 태어나기 때문에 실생활 속에서 지식을 확충해야 하고 일단 지식을 획득한 뒤에는 이것을 갖고 일을 경영해 간다. 그러나 최한기도 선천지(先天知)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비록 태어날 때 별다른 지식은 갖지 못하나 실생활 속에서 후천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선천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선천지를 확충해야 후천적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최한기에게 있어서 앎과 실천의 문제는 선행후지인 까닭에 행동을 통해 지식이 더욱 밝아지고 지식이 밝아진 뒤에는 선지후행인 까닭에 행동이 더욱 확연해진다. 따라서, 최한기에게 있어서 지행합일설과 지행병진설은 서로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그는 지행의 문제를 이기(理氣)와 관련시켜 기가 발하매 이가 타는 기발이이승(氣發而理乘)을 선행후지의 경우로, 이가 발함에 기가 타는 이발이기승(理發而氣乘)을 선지후행의 경우에 비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