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지부대신의 관리 밑에 있었으며, 조세와 기타 세입 징수에 관한 사무를 맡았다. 조세를 체납한 자에 대해서는 처분할 집행권을 가지고 있었다.
1895년 3월 26일에 발표된 칙령 제56호 「관세사급징세서관제(管稅司及徵稅署官制)」에 의해 설치되어 같은 해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상급기관으로 관세사의 감독을 받았다. 책임자는 징세서장으로 판임(判任)이었으며, 그 밑에 징세주사(徵稅主事)를 두었다. 설치 당시 전국 징세서장은 모두 220인이었다.
이 관청은 수입조정관(收入調整官)으로서 징세 명령이나 납액 고지(納額告知)를 알리고 그것에 따라 조세와 기타 수입의 징수를 담당하였는데, 각 읍에 부세소(賦稅所)를 설치하여 다음과 같은 업무를 처리하였다.
전제(田制)와 지적(地籍)에 관한 사무, 지세(地稅)·잡세와 조세 외 수입(租稅外收入)의 부과에 대한 사무, 재결(災結)·진결(陳結)의 검사와 지세 감면에 관한 사무, 신기전(新起田)·환기전(還起田)의 검사와 그에 부과되는 세액을 사정(査定)하는 업무, 징세 명령과 납액고지서의 제조·발포(發布) 등의 업무였다.
이처럼 이 관청이 설치됨으로써 종래 지방관인 군수·관찰사가 담당하던 징세 업무를 이제 독립된 징세 기관에서 담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북부 지방을 비롯한 일부 지방에서는 징세서를 설치하지 않고 종전대로 각 부(府)·군에서 직접 징세사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사실상 징세기구가 이원화됨으로써 세무 행정을 독립시키고자 했던 정부의 처음 의도는 정부 재정의 궁핍이 예상보다 커 실현되기 힘들었다. 결국, 같은 해 9월 관세사급징세서관제는 법령에 의해 시행이 정지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