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고은리 고택(淸州 高隱里 古宅)은 1861년(철종 12)에 지어진 부농(富農)의 주택이다. 안채를 제외한 건물들은 1930년대에 다시 지어졌다.
근래에 사랑채의 전면에 유리문을 설치하였다. 이는 내부 공간을 더 확보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 집은 마을의 가장 안쪽인 야산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인 입지에 지어졌다.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대지의 지형에 순응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광채 등을 배치하였다. 행랑채와 사랑채를 대지 전면에 길게 나란히 배치했는데, 사랑채가 행랑채보다 반 칸 앞쪽(사랑마당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초가(행랑채)와 와가(사랑채)의 지붕 재료, 기단과 건물의 높이 차이에서 두 건물의 위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행랑채의 동쪽 끝에 있는 대문간 기둥에서 시작한 담이 사랑채 뒤를 지나 대지 주변을 두르고 다시 행랑채의 서쪽 끝 기둥으로 연결된다.
행랑채는 정면 8칸, 측면 1칸의 일자형 초가 건물이다. 서쪽부터 잿간, 외양간, 부엌 각 1칸과 방 3칸, 그리고 동쪽 끝 사랑채 쪽에 대문간 두 칸으로 구성된다. 가구는 3량 구조이며, 지붕은 초가지붕이다.
사랑채는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놓였는데, 전후좌우에 툇간이 있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자형 건물이다. 앞에 너른 사랑마당을 두고 남동향으로 자리하였다. 사랑채는 사랑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는데, 대청 앞에는 사분합문을 설치하였다. 사랑방은 옆의 툇간을 연결해서 사용하고 그 밖으로 벽장을 설치했으며 벽장 하부에 함실(아궁이)을 설치하였다. 건넌방은 칸이 사방 8자(2.46m)로 너비가 다른 두 실의 칸 너비 2.73m보다 한 자 좁다. 가구는 2고주 5량 구조이고, 지붕은 겹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사랑채의 옆(북동쪽)에서 언덕이 시작되는데 그곳에 수령이 300~400년이 된 회나무가 있다. 사랑채 뒤로 한 칸 정도 물러나 세워진 담은 내외담의 성격으로, 대문간 맞은편 위치에는 중문 격인 일각대문을 설치하였다.
안채는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지어진 정면 5칸, 측면 4칸의 ㄱ자형 건물이다. 안방과 웃방, 대청, 건넌방으로 이루어진 몸채에 안방 반 칸과 부엌 한 칸 반 등 두 칸이 돌출해 날개채를 이룬다. 부엌 옆(남동쪽)을 제외하면 사방에 툇간이 구성되었다. 웃방은 뒤의 툇간을 통합해 한 칸 반 크기이다. 대청의 앞뒤 툇간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고 대청과 부엌 사이(안방 앞)에도 툇마루를 설치해 대청에서는 툇마루를 통해 모든 실로 연결된다. 몸채의 양측 툇간에는 툇마루를 설치했는데 맨 뒤는 막아서 골방으로 쓴다. 건넌방 앞의 툇간은 함실로 만들고 그 위에 벽장을 설치하였으며, 뒤 툇간은 광으로 만들었다. 대청, 골방, 툇마루의 바닥은 모두 우물마루다. 부엌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벽장과 다락을 설치하였다. 안채의 가구는 2고주 5량 구조인데 대청 전면의 고주는 생략하였다. 칸의 너비가 2.61m인 부엌을 제외하면 모든 칸은 너비와 깊이가 각각 2.76m(9자)로 넓은 편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이다.
안채 동쪽의 곳간채는 정면 3칸, 측면 한 칸 반의 일자형 건물이다. 한 칸은 흙바닥, 두 칸은 마루인데 앞에는 툇간이 있다. 가구는 평4량 구조, 지붕은 초가지붕이다. 안채의 날개채 뒤에 있는 광채는 정면 3칸, 측면 두 칸의 초가 건물이다.
청주 고은리 고택은 ㄱ자형 안채를 중심으로 한 안채 영역과 일자형 사랑채를 중심으로 한 사랑채 영역을 담으로 뚜렷이 구분하고 기단과 건물 높이와 지붕 재료로 행랑채와 사랑채 사이의 위계를 분명히 표현하는 등 한옥의 격식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부농의 주택답게 두 채의 곳간을 두어 곡물 수납 공간을 여유있게 구비하였다. 간살이를 크게 잡고 채의 사방에 툇간을 구성해 실의 공간을 확대하거나 부속 공간을 갖춘 이 집에서는 늘어난 공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변모한 조선 후기 한옥의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