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언(聲彦), 호는 화강(華岡). 최격천(崔格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창문(崔昌文)이고, 아버지는 성균진사 최윤곤(崔潤坤)이며, 어머니는 장연노씨(長淵盧氏)로 노주학(盧周學)의 딸이다.
1851년(철종 2)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852년 승문원부정자, 1860년 성균관전적·사헌부지평을 지냈다.
1867년(고종 4) 공조참의, 1868년 승정원우부승지를 지냈고, 1869년 외직(外職)인 대흥군수(大興郡守)로 나갔다. 이 때 목민관으로서 치정(治政)하였던 일들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하여 『대흥일록(大興日錄)』이라는 저술을 남겼다.
1871년 우승지 겸 경연참찬관(右承旨兼經筵參贊官) 및 춘추관수찬관(春秋館修撰官)을 역임한 뒤 사직하여 귀향하였다. 1876년 국가에 큰 가뭄이 들고 흉년이 되어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자 사재(私財)를 털어 빈민을 진휼(賑恤)하고 환곡(還穀)을 대납해주었다.
목민관으로서의 선정과 효행 등으로 수차례 백성들이 국가에 포상할 것을 진정한 글들이 문집의 부록에 실려 있다. 저서로는 『화강일고(華岡逸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