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양문록(河陳兩門錄)」은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초반에는 계모형 가정소설처럼 한 집에서 일어나는 계모와 전처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으나 이를 가문과 가문 간의 갈등으로 발전시켜 전체적으로는 가문소설의 성격을 보인다.
전 25권 25책. 국문 필사본. 목판본은 없고 필사본과 구활자본으로 존재한다. 필사본은 장서각 왕실 도서 낙선재본에 소장되어 있고, 아울러 영리를 위해 서책을 빌려주기 위해 제작한 세책본으로 25권 25책의 러시아 동방학연구소본과 29권 29책의 일본 동양문고본이 있다. 세책본은 동방학연구소본이 선본이다. 활자본은 1915년 출판된 동미서시본과 신구서림본, 1925년 출판된 경성 동양대학당본, 광복 이후 1954년 출판된 공동문화사본이 있다. 필사본 그리고 최초의 구활자본인 동미서시본은 영향관계가 없는 독자적인 본이며, 동미서시본이 이후 출판된 구활자본에 영향을 주었다.
송나라 태종 때 대사마 대장군 남정후 하의지는 부인 윤씨에게 자녀가 없자, 주씨를 부인으로 맞아 3남 1녀를 두고 윤씨도 남매를 낳는다. 영화 · 주화 · 종화와 교주는 주씨의 소생이고, 백화 · 옥주는 윤씨의 소생이다.
윤 부인이 죽자 주씨가 옥주 남매를 기르게 된다. 하공은 선녀같이 아름다워진 옥주를 고아가 되어 자기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진원경의 아들 세백과 약혼시킨다. 윤 부인이 죽은 뒤 하공이 옥주 남매를 더 사랑하므로 주씨는 자기 자녀들과 짜고 이들을 죽이려 한다. 주씨의 딸 교주도 세백을 사모하여 백년가약을 맺자고 조르다 거절당하자, 어머니와 짜고 아버지에게 세백이 자기를 겁탈하려 하였다고 거짓말을 한다.
하공이 노하여 세백을 처형하려고 하자 옥주는 세백을 피신시키지만 아버지로부터 오해의 말을 듣고 자살한다. 이때 황룡이 옥주를 구하여 서역 곤륜산 선계에 내려놓아, 옥주는 무술을 공부하게 된다. 백화도 양중희의 아들 훈장이 된다. 주씨의 아들이 세도를 부리자 하공은 그들의 오만한 행동을 피하여 방랑의 길을 떠난다.
세백은 도승에게 수학하고 문무과에 모두 장원 급제하여 병부 시랑이 된다. 황제의 사랑이 세백에게 기울어지자 영화 형제가 세백을 죽이려고 모함하다가 처형당한다. 이에 조정에서는 하공 일가에 대한 포박령을 내린다. 양공의 집에 의탁하고 있던 백화는 양공의 딸을 구해 주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약혼을 하게 된다. 백화는 자기의 포박령을 보고 자수하고 이어서 아버지 하공도 자수하였는데, 하공 부자는 세백의 주선에 의하여 유배된다.
선계에서 공부하던 옥주는 남장을 하고 과거에 응시하려고 상경하였다가 세백을 만나 친구가 된다. 옥주가 문무에 장원 급제하자 황제는 부마로 삼으려 하였으나 옥주의 진정으로 포기하고 세백을 부마로 정한다. 세백은 어쩔 수 없이 승낙했으나 옥주만을 생각한다. 이때 변족이 침략하므로 진세백과 하옥주를 출전시킨다. 양 원수가 변족을 물리치니 황제는 진 원수를 이부 상서에 소주백으로 봉하고 하 원수는 강주후로 봉하여 그 전공을 치하한다.
드디어 공주와의 혼인날이 임박하자 세백은 병이 든다. 세백이 완쾌되자 다시 택일하므로 세백은 고민에 빠진다. 이때 마침 서촉 왕이 침략하여 옥주가 출전할 때 세백도 자원한다. 진중에서 진 원수는 하 원수가 여자임을 알고 신원을 물으니 하 원수는 어쩔 수 없이 고백한다. 진 원수는 연정을 이기지 못하여 하 원수(옥주)에게 달려들었는데 하 원수는 도술로써 피한다. 진 원수는 음식을 전폐하고 하 원수의 혼인 승낙을 받기를 원하자 하 원수는 반승낙을 하고 진 원수를 위로한다.
적군 격퇴 후 하 원수는 사임하고 임금을 속인 죄를 상소하자, 임금은 비로소 하 원수가 여자임을 알고 진 원수와의 관계도 알게 된다. 세백이 옥주와 혼인하려 하니 황제가 크게 노하여 세백을 투옥시킨다. 옥주가 자취를 감추자 황제는 부득이 세백을 복직시키고 하공 부자의 죄를 용서하지만 세백은 옥주를 찾아 떠난다.
옥주는 아버지의 유배지로 가서 병중인 아버지를 낫게 한 뒤 선계로 간다. 하공은 옥주를 찾아나선 세백과 만나 세백을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황제가 돌아온 세백에게 공주와 택일하라고 하므로 세백은 고질병이 재발하여 사경에 빠진다.
옥주가 세백의 병을 고치러 오자 황제는 옥주와의 혼인을 승낙한다. 세백은 옥주와 혼인한 뒤에 다시 공주와 혼인한다. 공주는 옥주를 시기하고 죽이려다 투옥된다. 이에 옥주가 공주를 뉘우치도록 하니, 공주는 깨닫고 세백도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 뒤 세백은 두 부인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지낸다.
「하진양문록」은 25권의 장편으로, 1788년(정조 12)에 지어졌거나 옮겨 적은 것이다. 작품은 초반에는 계모형 가정소설처럼 한 집에서 일어나는 계모와 전처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으나 이를 가문과 가문 간의 갈등으로 발전시켜 전체적으로는 가문소설의 성격을 보인다.
주인공들의 비정상적인 출생과 어린 시절에 겪는 고행 · 수학 과정 · 영웅담 등이 얽어져 있으며, 남녀 주인공들의 애정 문제로 구성되어 있다. 애정 문제가 전 작품의 3분의 2 이상 차지하고 있고 사건들을 전개시키는 데 있어서 우연성과 전기성이 남용되어 있다. 그러나 많은 면수에 이와 같은 복잡성을 띠면서 치밀하고 조리 있게 구성하여 놓았다.
작품 구성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남자 주인공 세백이 옥주와 혼인하기 위하여 모든 부귀영화와 권세를 버리고 그들의 사랑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주인공이 당시에 정의의 상징이었던 임금의 명령에 굴복하지 않고 혼인을 성립시키는 과정도 이색적이다. 여자 주인공이 약혼한 뒤나 혼인한 뒤를 막론하고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강렬한 개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 또한 예사롭지 않다. 구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사건의 성격과 심리적인 변화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을 세심하게 구성하여 놓았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 구성은 선악의 보조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주인공들의 개성을 뚜렷이 부각시켰으며, 이전의 소설들처럼 주인공과 그들의 행동이나 운명을 지배하고 결정짓는 옥황상제 사이를 직선적으로 연결시키지 않는다. 주인공과 옥황상제 그 사이에 새로운 인물인 배후 인물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그들의 고난을 해결해 주는 기능을 하게 함으로써 구성에 있어 좀 더 발전된 면을 보여 준다.
고전소설의 전형적 표현법인 서술적 표현을 하고 있으며 인물 · 사건 · 배경에 대한 표현은 어느 작품보다도 구체적이다. 인물 표현은 하나의 전형화된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강한 개성을 부여한다. 그리하여 주어진 운명 속에서 맹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고 고민하고 몸부림치고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인간상을 설정한다. 이와 같은 인간상을 통해 당시의 선각적인 인간상을 볼 수 있고, 생에 대한 좌절과 인간의 상실로 인하여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습까지도 연상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