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성격을 지닌 수산업 회사이다. 정확한 설립시기는 미상이나 사료에 나타나는 활동시기는 1888∼1890년이며, 합자형태를 띤 관허회사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회사의 출현은 개항 이후 일본인의 조선연해 어로활동이라는 경제적 침략에 기인한다.
즉, 1883년의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에 의해 일본은 전라·강원·경상·함경 4도 해안에서의 어로권을 획득하였다. 1888년에 이르러서는 비록 선척의 제한은 있었으나 경기 연안에서도 고기잡이를 할 수 있도록 조선정부와 잠정규칙을 약정하였다. 이로써 일본의 어로권은 조선의 서북 연해에까지 미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회사의 설립은 이러한 일본인의 조선어장 침탈이라는 새로운 사태에 대한 국내 대응의 한 형태였다. 이 회사는 1888년 5월 일본인을 고용해 동남 연해에서 어채(漁採)할 것을 허가받았으나, 일본인과 사사로이 차관교섭을 하다가 발각되어 정부로부터 영업정지 지시를 받았다.
이에 각 사원은 자본을 각출해 회사를 복설(復設)하였다. 이 때 고래·멸치 및 일체의 어물포획을 주업종으로 정하고 정부로부터 빙표(憑票)를 발급받았다.
이 회사는 관허회사로 정부의 특별보호를 받았는데, 당시 통리아문(統理衙門)은 이 회사가 활동하는 경상·전라·강원·함경도 등 각 연해 지방관에게 이 회사에 대한 편의 제공을 지시하였다. 또한 관허 없는 사설회사의 외국인 고용을 금지해 이 회사에만 외국인 고용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해 주었다.
1888년 10월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어채기기(漁採機器)를 구입하거나 일본인 어부를 고용하면서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다. 1890년 2월에는 함경도 북청 등지에 지점을 개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특권을 남용하고 연해 어민의 이익을 침해해 어민들의 원성이 높아짐에 따라, 같은 해 5월 정부에 의해 철폐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