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바다의 비곡」. 1924년 6월부산에서 영화제작을 목적으로 설립된 조선키네마주식회사의 제1회 작품이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는 일본인들의 모임인데, 당시 부산에서 신극공연을 하던 무대예술연구회 회원들을 받아들이며 지방 최대의 난제였던 연기자 문제를 해결하고 본격적인 영화제작에 착수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일본인 다카사(高佐貫長)가 왕필렬(王必烈)이라는 우리 이름으로 연출을 맡았고, 이경손(李慶孫)이 조연출(감독보)을 맡았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경손은 각본에도 조력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제주도를 찾은 두 젊은이 문기(文基)와 호영(浩永)은 캠핑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기진한다. 문기는 실족하여 숨을 거두고, 그가 남긴 반 조각 십자가 목걸이를 품은 채로 나무꾼에게 발견되어 살아난다. 나무꾼의 딸과 정을 나누던 호영은 임신한 그녀를 홀로 남긴 채 문기가 남긴 목걸이를 걸어주고 떠나간다.
뒷날 호영이 어떤 처녀와 혼인하게 되나 그 여인은 또 하나의 반쪽 목걸이를 간직한 문기의 약혼녀였다. 그녀는 문기의 씨앗을 몸 속에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을 호영은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훗날 성장한 두 아이는 우연히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목걸이의 비밀을 알게 된 후 남매 사이임을 슬피 여겨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 영화는 우리 영화 초기에 많은 영화인들이 출연하여 초기 영화인 형성에 촉매가 되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이월화(李月華, 나무꾼의 딸과 그 딸의 1인 2역)·안종화(문기의 아들)·이주경(李周璟)·이채전(李彩田)·주삼손(朱三孫)·윤헌(尹櫶)·유수영(兪守影)·박승호(朴勝浩)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