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許升)은 견룡(牽龍)으로 용기와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사람들이 복종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무신정권 최고 집정자 정중부(鄭仲夫)의 아들 정균(鄭筠)이 허승을 좋아하였고, 경대승(慶大升)과도 친한 사이였다.
허승의 행적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1179년(명종 9) 경대승과 함께 정중부 세력을 제거한 것이었다. 경대승은 평소 정중부가 하는 짓을 분하게 여겼고,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공주에게 장가들기를 몰래 도모하므로 왕이 이를 근심하였다. 이에 경대승이 허승을 회유하여 같이 정변을 모의하였다.
경대승에게 허승의 협력이 필요하였던 것은 그가 견룡군(牽龍軍)이라는 왕의 친위군이라는 점이었다. 이를 통해 왕을 측근에서 호위하는 견룡군을 동원하기 쉬웠을 것이고, 한편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왕의 행차 등 모든 정보를 사전에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허승은 정균과도 매우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별다른 의심 없이 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거사 당일 경대승 세력은 허승이 먼저 정균을 숙직실에서 죽인 것을 기회로 정중부 세력을 대거 제거하였다.
이 공로로 허승은 태자부(太子府) 지유별장(指諭別將)이 되었다. 이후 그는 정변의 공로를 믿고 거만하여 방자하게 굴었고, 몰래 불량배〔악소(惡小)〕를 길렀으며, 또한 동궁(東宮)을 가까이 모시면서 뒷벽에 누워서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어 안하무인격이었다. 이에 정변 다음 해에 경대승이 그를 의심하고 꺼려 자기 집으로 불러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