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붕(洪鵬)은 1539년(중종 34)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천유(天游), 호는 경재(敬齋)이다. 아버지는 주부(主薄)를 지낸 홍거방(洪巨舫)이다. 부인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세 명의 아들이 있는데, 홍경(洪慶) · 홍연경(洪衍慶) · 홍치경(洪致慶)이다. 홍경은 생원(生員)이 되었고, 홍연경은 참봉(參奉)을 지냈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홍붕의 관력이나 가족 및 교유 관계 등은 극히 제한된다. 다만, 조평(趙平)의 문집 『운학집(雲壑集)』 10권에 홍붕의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어 있다. 조평이 직접 지었던 「묘갈명」으로 "제용감첨정홍공묘갈명(濟用監僉正洪公墓碣銘)"이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홍붕은 1662년(현종 3) 전북특별자치도 임실에 있는 학정서원에 배향되었다. 학정서원은 1660년(선조 33)에 지방 유림들의 뜻을 모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리 남쪽 아구정(迓鷗亭)에 창건되었다. 박번(朴蕃) · 박훈(朴薰)의 학업과 덕행 등을 추숭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건된 서원이었다. 1621년(광해군 13) 주천동(酒泉洞)으로 옮겨 지은 후 김천일(金千鎰)을 배향하였다. 이후 홍붕도 학정서원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1659년(효종 10)에 홍붕의 「묘갈명」을 지었던 조평도 추가로 배향되었다. 홍붕이 학정서원에 배향된 사실을 통해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지역에서 그의 학업과 덕행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