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효직(孝直). 홍수제(洪受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우선(洪禹宣)이고, 아버지는 홍계위(洪啓褘)이며, 어머니는 이형영(李衡永)의 딸이다. 판서를 지낸 홍계희(洪啓禧)의 종조카[從姪]이다.
1751년(영조 2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정언으로 처음 부임하여 영의정에 새로 임명된 이종성(李宗城)이 강퍅하고 간사한 사람으로 음험하고 사특한 모의가 모두 그의 지휘에서 나오고 있다는 소를 올렸다가 절해(絶海)에 유배되었다.
1754년 유배에서 풀려나 정언에 재등용되었고, 그 뒤 교리·수찬·문학·지평·부수찬을 역임하였다. 1759년 대사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