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영조(재위 1725∼1776, 조선 제21대 왕)가 친히 왕세손(정조)과 함께 강학한 후 시구를 내리자, 강학에 참여한 신하들이 어제에 화답하여 지어 올린 것[賡進]으로, 당시의 어제와 참여자들의 시를 첩으로 제작하여 참여자들에게 1건씩 분사(分賜)한 것 중의 하나이다.
본 갱진첩은 당시 승정원 주서였던 유익지(柳翼之, 1733~1786)가 받았던 것으로, 2005년 1월 7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충주시 문화동 소재 전주유씨(全州柳氏) 낙봉공파(駱峰公派) 종중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2012년 문화재가 도외 지역으로 관리 이전되면서 지정 해제되었다.
필사된 12폭의 시를 1첩(帖)의 첩장본(帖裝本)으로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33.5㎝, 가로 23.5㎝이다.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1770년(영조 46) 2월 23일(경오일)에 영조가 왕세손(정조)과 함께 『중용(中庸)』을 강학한 후 “조손동강일당중(祖孫仝講一堂中, 조손이 한 전당에서 함께 강학을 하도다), 작세금년연강동(昨歲今年宴講同, 작년과 금년의 연회와 강학이 같은 곳에서 열리도다)”라는 어제 시구를 내리자, 왕세손을 비롯한 승지 · 사관 · 시위신(侍衛臣)들이 지어 올린 시를 모은 시첩이다.
전구(前句)는 영조와 세손이 광명전(光明殿)에서 함께 강학한 경사(慶事)를 표현한 것이며, 후구(後句)는 전년(1769)과 금년(1770)의 강학이 모두 광명전에서 열린 경사임을 표현한 것이다.
영조의 어제에 갱진한 인사로는 왕세손을 비롯하여 채제공(蔡濟恭) · 윤동섬(尹東暹) · 홍양한(洪良漢) · 이수봉(李壽鳳) · 박필규(朴弼逵) · 김광묵(金光黙) · 서유량(徐有良) · 김익(金熤) · 이병정(李秉鼎) · 신오청(申五淸) · 신상권(申尙權) · 김만구(金晩耈) · 최옥(崔鈺) · 김하재(金夏材) · 오정원(吳鼎源), 그리고 유익지 등 17인이다.
이 갱진첩은 내용뿐만 아니라, 영조의 친필이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당시의 정치 및 인물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