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서원은 원래 조선 전기의 학자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구주서당(龜州書堂) 자리였는데, 1694년(숙종 20)에 그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관수루는 이 구연서원의 문루로,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이 문루는 구연서원 건립 후 반세기 가량 지난 1740년(영조 16)에 문인 화가로 유명한 조영석(趙榮祏)이 안음현감을 역임할 때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구연서원이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될 때 이 건물도 영향을 받았고, 이후 다시 구연서원 건물이 중수될 때 이 문루도 함께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규모와 형태는 중층 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ㄷ자 기단 위에 자연석의 초석을 놓고 8개의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 바깥쪽의 네 모퉁이에는 적절하게 높이를 조절한 활주를 세웠다. 누의 정면에는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달았으나, 나머지 방향의 공간들은 모두 개방시킨 구조를 이루고 있다. 위층 밑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방 주변으로 계자각 난간을 둘렀다.
이 문루는 구연서원의 정문에 해당되는 건축물로, 일반 누정 건축물의 경우 보편적인 기법으로 기둥들을 대부분 쪽 곧은 재목을 사용하는데, 이 누정은 건축 자체가 자연암반을 활용하면서 하부 기둥으로 구부러진 자연목을 그대로 이용하는 기법을 적용하였다. 이는 자연과 조화를 제일차적 목적으로 한 듯하고, 때문에 매우 아름다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누정의 건축사적 의의는 건축기법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이 누정은 누정 건축의 모범이라 할 만큼 입면의 비례가 뛰어나 18세기 전반 조선 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