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동벽의 아미타삼존벽화와 서벽의 아미타내영도, 오불도 2점, 관음보살도를 비롯한 보살도 5점, 주악비천도 6점, 연화당초향로도 7점, 보상모란문도 5점, 당초문도 1점, 입불도 1점 등 총 29점으로, 원래는 극락보전의 네 벽에 그려졌던 것이나 지금은 모두 해체되어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9점의 불화 가운데 동쪽벽 중앙에 그려져 있던 아미타삼존벽화와 서쪽벽 중앙에 그려져 있던 아미타내영도, 15세기로 추정되는 관음보살도, 당초문도 2점 등 4점은 극락보전이 세워진 143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나머지 벽화는 조선후기에 건물을 보수하면서 새롭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삼존불벽화는 극락전의 동쪽 벽 중앙에 위치해 있던 벽화로서, 화면의 중앙에 설법하는 본존과 두 협시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합장한 채 본존을 향하고 있는 입상의 두 보살상과 여섯 나한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은 이중륜광(二重輪光)을 배경으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머리에는 육계(肉髻)가 큼직하며 중앙에 중간계주(中間髻珠)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편이며, 통견(通肩)의 법의를 걸친 신체는 당당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좌세를 보여준다. 오른손은 가슴 안쪽으로 끌어당겨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마주 잡았으며, 왼손은 길상좌를 하고 있는 오른쪽 발 위에 대어 첫째와 셋째손가락을 마주잡아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결하였다. 큼직한 육계와 중간계주의 묘사, 승각기를 묶은 띠 매듭의 표현, 단정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신체표현, 자연스러운 옷주름의 처리 등에서 고려 말∼조선 초기 불상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본존 좌우에 협시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손의 모습이 약간 다를 뿐 보관을 쓰고 구름 위 연화대좌 위에 앉아 본존을 향한 측면향의 자세, 가슴 중앙에 묘사된 영락 양쪽에서 띠 매듭이 신체 좌우로 흘러내리는 모습, 어깨 위로 서너 가닥의 머리카락이 매듭지어 흘러내리는 모습 등이 거의 비슷하다. 본존과 협시보살 주위로는 본존을 향해 합장한 입상의 보살 2구와 나한 6구가 묘사되었다. 나한 가운데 본존 좌우로 배치된 노비구와 젊은 비구는 각각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존불과 보살, 나한들은 모두 구름에 둘러싸여 있는데, 화면 상부에는 날카로운 산봉우리가 연이어 묘사되어 있어 아미타극락정토를 표현한 듯 하다.
삼존불과 상대하여 그려진 서벽의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불이 8대보살과 8비구를 거느리고 극락왕생자를 맞이하는 장면을 그렸다. 아미타불은 오른손을 내밀고 왼손은 어깨 위로 들어 오른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여래의 왼쪽에는 백의를 입고 정병을 든 관음보살을 비롯하여 문수보살, 미륵보살, 금강장보살 등 네 보살과 네 비구, 오른쪽에는 정병이 그려진 보관을 쓴 대세지보살을 비롯하여 보현보살, 지장보살, 제장애보살과 네 비구가 구름 위에 둘러싸여 모두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도가 자연스럽고 오른쪽을 향하여 나아가는 듯한 인물들의 동적인 자세와 자연스러운 필선 등은 삼존불도와 거의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이 벽화 외에 측벽 협칸 위 대공과 주심도리 사이에 있었던 정면을 향한 관음보살을 그린 관음보살도는 채색이 많이 박락되어 정확한 형태는 잘 알 수 없지만 연화대좌 위에 앉아 선정인을 취하고 있는 관음보살의 유려한 필치로 보아 15세기경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이외에 삼존벽화와 아미타내영도의 위쪽에 그려졌던 오불도를 비롯한 연화당초향로도(蓮華唐草香爐圖), 주악비천도(奏樂飛天圖),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등은 모두 조선후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무위사 극락전의 29점 벽화는 조선 초기에서 후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우리나라 사찰벽화의 다양한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