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권은 1928년 8월 18일 전라남도 나주군 영산포에 있는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영산포 남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초등학교 급사,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였다. 20세 때부터 독학으로 문학공부를 하였으며, 1955년 황순원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두 나그네」와 「참외」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66년 오유권은 우체국에서 퇴직한 후 더욱 왕성하게 집필활동을 하였다. 남긴 작품만도 무려 270편에 달해 국내 소설가로는 최다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81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에도 오른손만 사용하는 반신불수 상태로 1백여 편의 작품을 남겨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1999년 3월 지병으로 작고했다.
오유권 소설의 특징은 체험의 진실한 반영에 있다. 특히 농촌에 묻혀 사는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어린 인정담으로 일관하였다. 주로 농촌을 소재로 한국의 전통적이고 향토적인 정서를 형상화하였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고향인 영산강 유역의 농민들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이를 통해 현실과 동떨어진 근대화나 물질에 치우친 서구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1959년 샤머니즘 세계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단편 「돌방구네」를 발표하였다. 1960년 『현대문학』에 연재된 중편소설 「이역의 산장」으로 현대문학 신인상(1961)을 받았는데, 6·25전쟁과 분단의 비극을 그린 이 작품은 1994년 「만부방」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1962년 역사적인 관점에서 농촌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그린 장편 『방앗골 혁명』을 출간하였으며, 1965년 물질문명에 저항하는 한 노인의 심정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단편 「기계방아 도는 마을」을 발표하였다.
대표작으로 「소문」(1957), 「돌방구네」(1959), 「방앗골 혁명」(1962) 등과 『황토의 아침』(1967), 『과수원집 딸들』(1980), 『농지상한선』(1988) 등의 소설집을 펴냈으며, 이밖에 주요 작품으로 「옹배기」(1956), 「쌀장수」(1956), 「가난한 형제」(1963), 「농지정리」(1970) 등이 있다. 1978년 자서전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를 출간하였고, 1998년에는 『오유권 선집』을 출간하였다.
1970년 한국일보사에서 주는 한국창작문학상을 받았고, 1978년에는 흙의 문학상을 받았으며, 1979년 문화공보부 장관상과 1994년 정부 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