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돈의 사」는 이광수가 『조선일보』에 1935년 9월 30일부터 1936년 4월 12일까지 총 137회에 걸쳐 연재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이광수가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로 이직한 후에 삼국시대의 설화적 인물인 이차돈을 주인공으로 삼아, 『동아일보』에서 뭇사랑을 받았던 역사소설을 시도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은 국법으로 금지된 불교를 신라에 포교하고 공인받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차돈의 순교자적 삶을 부각한다. 순교자 형상은 천도교·기독교·불교를 아울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과 초월을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식의 산물이다.
이광수는 「이차돈의 사」를 연재하기 전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어떤 이유로 조선일보사로 옮겼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상해 임정의 활동을 접고 조선에 돌아와 귀순과 변절로 비난받던 시절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동아일보』를 배신했다는 비난은 면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세간의 논란 중에, 사랑하던 차남 봉근을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는 아픔까지 겹쳐서 그는 조선일보사를 퇴직했다. 자하문 밖 홍지동에 따로 별장을 지어 『법화경』 주해하면서 다소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1936년 다시 『조선일보』의 고문으로 취임해 쓴 역사소설이 바로 「이차돈의 사」이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기소되고 마음의 스승인 도산 안창호의 죽음을 앞둔 폭풍 전야로 이 시기는 특징지어진다.
「이차돈의 사」는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려다 순교한 이차돈의 생애를 그린 작품으로 설화 속 인물을 현대적으로 재각색했다. 이차돈은 명문가의 자제이지만, 연인 달님〔月主〕과의 관계를 질투하는 거칠마로〔荒宗郞〕와 평양공주, 임금의 자리를 노리는 선마로〔立宗〕 등의 음모와 계략으로 인해 고구려로 추방당한다.
고구려로 쫓겨난 이차돈은 그 발전상에 놀라며 무엇이 진정으로 신라를 위한 길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차돈의 재주를 높이 산 고구려 왕족 메주한가는 이차돈에게 딸 버들아기〔柳兒〕와의 혼인을 제안하면서, 이차돈이 완전한 고구려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이차돈에게 거절당한다.
이차돈은 신라에서 온 자객을 살해하고 달아나던 중 고승 백봉국사(白峰國師)를 만나 불법을 전하여 백성을 제도하는 것이 신라를 구원하는 길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번뇌를 다스리고 불도에 정진한 끝에, 자신을 찾아온 달님 · 별님 · 버들아기 등과 함께 신라로 돌아와 불법을 전파하다 순교한다. 국법으로 금지된 불교의 포교 및 대중화는 그가 행한 순교의 이적, 즉 젖 같은 흰 피가 솟아나고 찬란한 광명이 몸을 감싸는 죽음의 신비화를 동반하며 이루어진다.
이광수 작품에서 반복되는 남녀 간 애정 갈등이 이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본연의 운명과 조건을 환기하기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엇갈리는 애정이 빚어내는 시기와 질투, 음모와 계략은 인간이 처한 근본적인 삶의 제약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시련과 방황은 이로부터 연유하는 것이다. 신라에서 고구려로, 다시 신라로 돌아오는 그의 편력은 세속의 혼돈에 맞서 진리를 깨닫는 성장담의 구조를 갖는다. 그를 둘러싼 정념의 화신인 여성인물들 또한 불법에 귀의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성장담의 일부를 공유한다. 자신에게서 주위 인물, 나아가 대중에게 불법을 전파하려는 그의 노력은 국법의 절대적 금기에 가로막힌다. 이를 타개하고 초월하는 최종적 계기가 바로 순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순교는 모든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진정한 해결의 장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악인들이 자결하거나 참회하는 처벌과 정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의 자식인 예수가 주1의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했듯이, 이차돈은 자기희생의 제의로 타락한 공동체와 중생을 구제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와 종파를 넘어 순교자를 요청했던 작가의식이 설화 속 인물인 이차돈을 조선의 예수로 거듭나게 만든 셈이다.
「이차돈의 사」는 순교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광수 특유의 애정 갈등으로 사사화(私事化)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비범한 남성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여성 인물들의 애정 문제가 두드러지면서, 당시의 시대상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차돈의 사」는 「순교자」 · 「거룩한 이의 죽음」 · 「금십자가」 등에 이르는 일련의 순교자 계열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된 작가의 죄의식이 드러난다는 지적도 있다. 단행본의 머리말에서, 그는 그릇된 인류 생활을 고치는 데 진리의 수행자인 순교자가 인류의 주2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그렇지 못하기에 더욱 순교자를 숭배하게 된다는 그의 말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순교자는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전형이라 할 것이다. 순교자를 주인공으로 한 다른 작품들이 단편과 희곡, 연재 중단으로 소품에 그친 데 비해, 「이차돈의 사」는 단편적 기록에 허구적 상상력을 최대한 개입하여 장편으로 마무리한 유일한 작품으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