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태자 ()

현대문학
작품
1926년 5월 10일부터 1927년 1월 9일까지,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역사소설.
작품/문학
창작 연도
1926.5.10-1927.1.9
발표 연도
1926.5.10-1927.1.9
간행 연도
1928.1.15
작가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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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마의태자』는 이광수가 1926년 5월 10일부터 1927년 1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역사소설이다. 1928년 1월 15일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동아일보』에 총228회 연재된 『마의태자』는 상편과 하편의 구성을 취했다. 상편은 궁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면, 하편은 제목으로 삼은 마의태자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천 년 사직 통일신라의 망국사를 두 주인공의 패배한 개인사로 그려낸 『마의태자』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비극적 정조로 당시 독자들의 공감과 사랑을 얻었다.

정의
1926년 5월 10일부터 1927년 1월 9일까지,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최초의 장편 역사소설.
작품 창작의 전후

상해임시정부의 활동을 접고 1921년 귀국한 이광수「민족개조론」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조선 사회의 공분을 산 「민족개조론」의 논란에도 『동아일보』는 이광수를 기자로 채용해 주3을 맡긴다. 『동아일보』에 「허생전」, 「일설춘향전」 등 중 · 단편의 역사물을 발표했던 이광수는 『동아일보』의 2차 주6주5 지면에 연재 중이던 「천안기(天眼記)」를 중단하고 『마의태자』를 새로 연재하게 된다. 중단의 이유로는 독자의 흥미 반감과 작가의 뜻을 꼽았다. 『마의태자』는 『동아일보』의 광고 문구에 역사소설을 타이틀로 내건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역사소설과 신문 매체 간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마의태자』의 연재 이래 이광수는 역사소설가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구성 및 형식

1926년부터 1927년까지 이어진 『마의태자』는 상편과 하편으로 나뉘어 연재되었다. 하편을 예고하면서, 상편은 궁예편이며 하편인 마의태자편의 주7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마의태자편의 서문이라고 하기에 상편이 하편보다 훨씬 길게 연재되었다는 점 때문에 서술상의 불균형 문제가 제기되었다. 대표적으로 김동인은 전체 700여 페이지 중 400여 페이지나 되는 대부분의 내용을 궁예의 이야기에 할애한 것은 소설의 일관성과 주제 의식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한다. 반면 『마의태자』의 서사 구성이 지닌 개별 에피소드의 중첩은 독자 대중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해 주8을 고취하는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는 정반대의 의견도 있다. 이를 종합하는 매체적 접근은 일제의 식민 권력을 대신해 조선의 주9 역할을 자처한 대중 매체의 이중 욕구가 『마의태자』의 서사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독자 확보의 상업성과 교화의 계몽성이 통일신라의 임박한 멸망과 영웅 궁예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궁예편을 마의태자편보다 확대시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마의태자』의 서사적 불균형은 당대의 매체 환경을 고려한 신문 주10의 일반적 특징임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내용

『마의태자』 상편 궁예편은 유모의 손에 자란 소년 미륵이 신라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서 시작한다. 그의 어머니 설부인은 경문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으나 질투에 눈이 먼 영화, 정화왕후에 의해 모함을 받아 죽게 되고 미륵은 유모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지난 사연을 듣게 된다. 출생의 비밀을 안 미륵은 궁에 침입해 복수를 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는 태백산으로 도주하여 승려가 되고, 여기서 신비한 도승 백의국선을 만나 의리와 인정에 대해 가르침을 얻는다. 우여곡절 끝에 궁예로 이름을 바꾼 그는 태봉국의 왕이 되어 인덕으로 백성들을 다스려 태평성세를 이룬다. 하지만 신하 왕건의 배신으로 죽게 되고, 왕건이 뒤를 이어 왕에 올라 고려를 창건한다.

『마의태자』 하편 마의태자편은 고려 왕이 된 왕건이 견훤의 침략으로 혼란한 신라의 구원자로 나서 항복을 받아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왕건은 딸 낙랑공주와 태자 김충을 혼인시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했지만, 그 속셈을 알아차린 김충은 혼사를 거절한다. 반면 낙랑공주의 뛰어난 미모에 반한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하는 조건으로 낙랑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인다. 신라를 바치려는 왕의 뜻을 만류하고 직언했던 태자 김충은 망국의 슬픔을 안고 궁을 떠난다. 베옷을 입고 금강산에 들어가 은거한 그를 세상에서는 마의태자로 불렀다. 세월이 흘러 낙랑공주는 홀로 연모하던 김충을 우연히 만나 출가하고, 왕건은 권력의 덧없음과 회한으로 김충에게 용서를 구한다. 김충은 복수의 무상함을 말하며 왕건을 용서한 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난다.

의의 및 평가

『마의태자』는 번역 소설을 제외한 창작 소설 중에서 역사소설의 타이틀을 단 최초의 작품이다. 상편과 하편을 통틀어 총 128회에 걸쳐 연재된 본격적인 장편 역사소설의 서막을 연 작품이기도 하다. 『마의태자』를 기점으로 이광수는 역사소설가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으며, 근대 역사소설 장르를 확립하는 데 일조했다.

『마의태자』는 구성의 결함이 일찍부터 지적되었다. 『마의태자』를 주1에도 못 미치는 주2으로 평가 절하했던 김동인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마의태자』가 지닌 동정과 주11은 조선 사회에 논란을 야기한 「민족개조론」의 소설적 형상화로 볼 수 있으며, 주12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받기도 한다. 소설이 연재된 1926년 순종 주13이라는 동시대적 사건은 천 년 사직 신라의 멸망과 교차하며 식민지 조선인이 처한 현실의 비애와 울분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공 마의태자의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은 사료 부족에서 비롯된 창작의 한계로만 볼 수 없으며, 비극적 대단원을 향해가는 강렬한 서사 효과를 창출한다는 점을 고르게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신라의 멸망을 성적 과잉과 타락으로 규정하는 ‘멸망의 젠더화’는 비판의 소지를 남긴다.

참고문헌

원전

이광수, 「마의태자」 (『동아일보』, 1926. 5. 10.~1927. 1. 9.)
이광수, 서은혜 감수, 『마의태자』 (태학사, 2019)

단행본

김동인, 『김동인전집』 6 (삼중당, 1976)

논문

공임순, 「식민지시대 흥망사 이야기와 여성 육체의 시각화」 (『시학과언어학』 9, 시학과언어학회, 2005)
서은혜, 「1920년대 이광수의 감정론과 마의태자에 나타난 ‘충의’의 정조」 (『한국근대문학연구』 27, 한국근대문학회, 2013)
이선경, 「1920년대 이광수의 신문연재 장편소설 연구」 (『현대소설연구』 6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8)
주석
주1

역사에 관한 이야기. 우리말샘

주2

강연이나 강의식의 말투로 이야기함. 또는 그런 이야기. 우리말샘

주3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 계속해서 매회 싣는 소설. 우리말샘

주4

간행을 중단하였던 신문이나 잡지 따위를 다시 계속하여 간행함. 우리말샘

주5

간행이 중단되었던 신문이나 잡지 따위가 다시 계속하여 간행되다. 우리말샘

주6

감독관청의 명령으로 신문, 잡지 따위의 정기 간행물의 발간을 일시적으로 중지함. 우리말샘

주7

책이나 논문 따위의 첫머리에 내용이나 목적 따위를 간략하게 적은 글. 우리말샘

주8

한 민족이 공유하는 고유한 정신. 우리말샘

주9

사회 구성원 간의 합리적 토론을 통하여 사회 구성원의 보편적 이익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담론적 공간. 독일의 사회 철학자 하버마스(Habermas, J.)가 구체화한 개념으로서, 공론에 근접하는 어떤 것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삶의 영역을 의미한다. 우리말샘

주10

신문에 계속해서 매회 싣는 소설. 우리말샘

주11

좋은 영향을 주어 생각이나 감정이 바람직하게 변화하도록 하는 힘. 우리말샘

주12

자기 민족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고 민족의 단결과 발전을 꾀하려는 집단적 의지나 감정. 우리말샘

주13

태상황, 황제, 황태자, 황태손과 그 비(妃)들의 장례. 또는 상왕, 왕, 왕세자, 왕세손과 그 비(妃)들의 장례.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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